취한 자들은 대개
자신이 무엇에 취해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 까닭은, 제 깜냥으로는,
한 알의 완벽한 진통제로부터 그들이
모가 없는 원형의 꿈을 기대하기 때문일 터인데,
안타깝게도 현실의 모든 진통제는
자신이 속해 있는 우주를
통증 대신 꿈으로 한계 짓는데 작용하기 때문에,
-진통제와 소화제가 다른 점이 있다면,
소화제는 내가 접근할 수 있는 우주를 규정짓는 반면,
진통제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우주를 규정짓는다 -
대개는 취기를 벗어나면서부터 열패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그날은, 그러니까
우연과 필연이 잇닿아 있는 틈새 속에서,
몇몇의 음란한 반역자들이 만나,
-번역Traduttore은 반역Traditore이고, 인간의 문학은 창작이기보다는 번역이므로,
또한 욕망에 충실한 자들은 음란한 자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이를테면,
시를 쓰는 어떤 인간, 그가 쓰는 시, 그의 헤어스타일, 소설에서 실패한 어떤 남자,
그가 마시는 술, 그의 가난, 소리를 하는 여자의 애정에 대한 문제, 남편과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쓰러져 내린 것뿐인데,
다음날 아침 열패감은 어느 날과 전혀 다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전날의 기억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더란 말씀,
그러니까 한 알의 완벽한 소화제를 삼킨 듯한,
통증 대신 꿈으로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였으되,
다시금 그 우주 속으로 접근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으니,
-꿈과 희망의 차이점은 방향성, 일종의 엔트로피 법칙,
모든 현상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꿈은 법칙에 제한받지 않고,
희망은 일관된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걸 품고 있는 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길잡이별의 은혜에 감사하려고 시작한 이 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우로보스라는 뱀처럼 길어져서,
고마움이 결국 미안함으로 이어지고 말았는데,
-고마움과 미안함은 같은 감정이 아닐까-
가스통을 매달고 유성처럼 달리지 마시고,
내년에도 같은 자리에서 그 별빛에 이끌릴 수 있기를,
커서가 별빛처럼 빛나는 이 순간에도.
2003.12.30 김솔
그날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너의 글에는 뭐랄까, 아련한 문학 향수 같은 것이 느껴져. 그 향기는 마치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묘한 이끌림이 있고. ^^ '취하다'에는 술 얘기말고도 도취와 황홀이라는 뜻도 있지. 너는 아마 거기 언저리까지 갔다가 온 모양이야. 그렇지 않고는 그 현실과의 열패감이 있을 수 없는 거지. 김영승 시인의 이런 시도 있잖아.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새해 복 많이 받고, 너가 원하는 글들이 힘차게 맥박처럼 두근대는 커서를 밀고 가길 바래. 아직은 청춘에게 빚진 것이 없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