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장 입구 철 지난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듯
얽매여 군데군데 찢겨진 채였다
기어이 그녀는 바다에 와서 울었다
버려진 슬리퍼 한 짝과 라면봉지,
둥근 병 조각조차 추억의 이정표였을까
해질 녘 바위에 앉아 캔맥주 마개를 뜯을 때
들리는 파도소리, 벌겋게 취한 것은
서쪽으로 난 모든 창들이어서
그 인력권 안으로 포말이 일었다
유효기간 지난 플래카드처럼
매여 있는 것이 얼마나 치욕이냐고,
상처의 끈을 풀어준다면 금방이라도
막다른 곳으로 사라질 것 같은 그녀
왜 한줌 알약 같은 조가비를 모아
민박집 창문에 놓았을까, 창 모서리까지
밀물 드는 방에서 우리는 알몸을 기댔다
낡은 홑이불의 꽃들이 저녁내
파도 위를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그녀가 잠든 사이, 밖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처럼 바람이 불었다
꺼질 듯한 모닥불에 마지막으로
찢겨진 플래카드를 던져 넣었다
이유없이 젖는날 있습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속에
그냥 바다를 떠올리는 날이 있듯이
그런날 글과 음악과 사진은
또 다른 세계를 안내합니다
산다는 것은 무수한 기억속에
추억 한 점을 떠올리는 건 아닐까 싶네요
홀로 있으되 홀로 존재하지 않듯이
함께 있으되 홀로 존재 하듯이
기억할 만한 것이 많다는 것은
아쉬움이 많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작은 공간이 커다랗게 느껴집니다
여백의 공간위에 파도소리가 울림으로 남겨집니다..
댓글 1
윤성택
2004.03.15 11:43
제 졸시를 기억해주시다니, 파도소리 따라 저도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되는군요. 새벽 무렵 이 시가 다녀갔었습니다. 중반 이후부터는 내가 아닌 화자가 불러주는 대로 시가 써지는 듯 싶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