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쓸쓸한 연애 / 윤성택

2004.03.13 12:22

전수빈 조회 수:297 추천:3




「쓸쓸한 연애」/ 『현대시학』 2003년 10월호


       쓸쓸한 연애 / 윤성택
        

        백사장 입구 철 지난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듯
        얽매여 군데군데 찢겨진 채였다
        기어이 그녀는 바다에 와서 울었다
        버려진 슬리퍼 한 짝과 라면봉지,
        둥근 병 조각조차 추억의 이정표였을까
        해질 녘 바위에 앉아 캔맥주 마개를 뜯을 때
        들리는 파도소리, 벌겋게 취한 것은
        서쪽으로 난 모든 창들이어서
        그 인력권 안으로 포말이 일었다
        유효기간 지난 플래카드처럼
        매여 있는 것이 얼마나 치욕이냐고,
        상처의 끈을 풀어준다면 금방이라도
        막다른 곳으로 사라질 것 같은 그녀
        왜 한줌 알약 같은 조가비를 모아
        민박집 창문에 놓았을까, 창 모서리까지
        밀물 드는 방에서 우리는 알몸을 기댔다
        낡은 홑이불의 꽃들이 저녁내
        파도 위를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그녀가 잠든 사이, 밖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처럼 바람이 불었다
        꺼질 듯한 모닥불에 마지막으로
        찢겨진 플래카드를 던져 넣었다
        


이유없이 젖는날 있습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속에
그냥 바다를 떠올리는 날이 있듯이
그런날 글과 음악과 사진은
또 다른 세계를 안내합니다
산다는 것은 무수한 기억속에
추억 한 점을 떠올리는 건 아닐까 싶네요
홀로 있으되 홀로 존재하지 않듯이
함께 있으되 홀로 존재 하듯이
기억할 만한 것이 많다는 것은
아쉬움이 많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작은 공간이 커다랗게 느껴집니다
여백의 공간위에 파도소리가 울림으로 남겨집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58 조만간 개편을, [4] 윤성택 2004.03.16 294
» 쓸쓸한 연애 / 윤성택 [1] 전수빈 2004.03.13 297
1456 조은영 양 당선되다! [12] 윤성택 2004.03.11 548
1455 젊음 [1] 조은영 2004.03.09 244
1454 오랫만이네요 [1] 김미서 2004.03.08 189
1453 윤성택 시인께 [2] 김언 2004.03.08 276
1452 형에게 [1] 조상호 2004.03.08 192
1451 반 고흐 아저씨 가라사대, [2] 조은영 2004.03.03 233
1450 성택이형~~! [3] 박초월 2004.02.23 250
1449 고마워요 [1] 스며들기 2004.02.20 211
1448 답글, 그리고요 [1] 윤성택 2004.02.18 349
1447 겨울은 전정의 계절입니다. [2] 홍연옥 2004.02.16 226
1446 동네가 공원이 된데요 [1] 권은정 2004.02.14 196
1445 이럴땐 세상 혼자인 것 같다 [1] 권은정 2004.02.13 190
1444 후... 하고 불면 [1] 김경미 2004.02.11 229
1443 밀림, 서점, 산책. [1] 김솔 2004.02.09 220
1442 부끄러운 만남 [2] 장인수 2004.02.09 220
1441 시골 기찻길 [3] 전수빈 2004.01.22 253
1440 그건 필수고... [5] 유문호 2004.01.21 246
1439 원고 마감일, [2] 윤성택 2004.01.20 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