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추위와 허기를 숙명처럼 받아들인 다람쥐와 청설모 덕분에 민둥산은 이듬해 참나무 숲으로 번졌다.
울긋불긋한 입사귀가 공중에서 미묘하게 흔들리자 옻나무는 매몰차게 낚싯대를 끌어내렸고 뱃속에 연어 알처럼 석류빛 눈 씨앗 가득 밴 용구름 한 마리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낙엽의 마른 시맥翅脈 속으로 바람이 상처를 내며 드나들었다.
대관령 덕장을 지나던 어느 시인은, 활처럼 굽는 펜으로 황태의 몸을 울려, 바닷새들을 정상까지 불러들였다.
겨울에 갑작스런 이별을 대비하여 횡경막 아래 묻어둔 발자국을 봄에 꺼내어 씹었더니 눈물에서 단물이 났다.
어떤 인간은 이듬해 사막으로 번졌고 헛된 말을 할 때마다 젖은 모래가 튀었다.
야단법석野壇法席이 열리는 무대는 시선보다 높고 그곳으로 오르는 모든 계단의 난간에는 다리 이름이 섭새겨져 있다.
마른 현을 조율하는 손가락마다 갑골문자처럼 새겨져 있는 주름들은 한 인간이 건너온 사막의 풍경을 증언한다.
거위침을 삼키는 자들은 위장병보다 허기가 더 수치스럽다.
발자국이 어지럽게 누운 자리에서 구둣솔 같은 갈대들이 자라나고 시링크스Syrinx가 강 위로 흘러가는 나르시스를 향해 갈대 피리를 분다.
화음은 대화의 방법일까? 아니면, 침묵의 방법일까?
그것은 아주 축하할 일이지만 내겐 축하객의 자격이 없으므로 축시祝詩 대신 축의금을 인편으로 보낸다. 지폐 위에는 아무런 사연도 적을 수 없다, 왜냐면 그것은 결코 한 가지의 얼굴과 한 가지의 이름과 한 곳의 주소를 지닐 수 없기 때문에.
멜로디를 따르는 자들은 쉽게 길을 잃는다.
비꽃은 낙엽이 누운 자리 위로 정확히 떨어지고 주검 대신 허물이 발견된다. 주검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검은 닻이고 허물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구명조끼다.
짐 모리슨은 몽마르트에 묻혔다, 몽마르트는 카페와 화가와 악사들로 번졌다.
어디로 떠날까? 발과 날개가 없는 추억은 불투명한 그림자에 묻어 무의식적으로 수용되면서 인간은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반도네온 속에서 주름진 슬픔은 출렁거리며 관능과 공명한다.
‘길’이란 단어는 상형문자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누운 산이 보이고 측백나무 가로수가 보이고 굽어 휘도는 강이 보인다. 그래서 그 단어를 다른 단어와 나란히 쓸 때마다 줄맞춤이 흐트러진다.
“질문10-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시험 문항) 나의 질문: “그렇다면 음악가들은 그 많은 악기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
(2004.3.31 PM 7시 30분, 울산 현대문화회관, 안트리오 공연에서)
2004.3.31 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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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엔 죄송했습니다.
제 흥에 겨워 글을 올려놓고
제 분노를 못 이겨 무례하게 지워버렸던 것 말입니다.
(탄핵이 통과하는 순간에는 도저히,
시대와 불륜을 범하고 있는 제 늘쩍지근한 글을,
제가 참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형이 달아준 답글까지 잃어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곳에 마음대로 심은 나무를 마음대로 뽑아내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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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가 다음주에 헤이리에 갈 수 있을는지,
어렵다는 건 분명한데,
아직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일단 글꽃 사람들을 모아보지요.
못 가게 된다면, 혼자서 많이 마음 아파할 겁니다.
아, 마음의 거리가 몸의 거리를 이겨내지 못하는 한탄스런 현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