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많은 날,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우산 몇을 만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늘 바라만 보았을 뿐, 건네지 못한 손. 사는 게 늘 덧칠하지 못한 밑그림 상태, 빤히 알면서 지나쳐버리는 무관심의 연속, 젠장 그렇습니다. 무거운 얼굴로 서있던 하늘이 끝내 그렁그렁 비를 풀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간격을 듬성듬성 띄우며 우산살 아래로 자신의 눈망울을 숨깁니다. 칸칸이 칸막이 쳐진 쓸쓸함이 길 위로 범람하는 시간. 저들의 젖은 등을 끌어와 뱅글뱅글 탈수해주고 싶다. 순간적이지만 깊어서 아픈 상처들을, 추억들을, 내가 되지 못하고 네가 되지 못한 말들을, 시를......그러나 아픔의 힘으로, 추억의 힘으로 우리는 다시 호흡하게 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젖어 있어 아름다운 날들이 있기에 시는 또 쓰지지요. 시,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