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망보다 습관이 지배하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 미래는 오염된 욕망으로 가득 차서 늘 경계해야 하는 무엇이었고 습관만이 기억의 순수한 이데올로기였다. 선배들은 대학생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책들을 정해 주었는데 셰익스피어나 괴테의 이름은 빠져 있었던 것 같다. 학생회 친구들은 학교 주위의 락 카페나 고급 음식점 앞으로 몰려 들어가 시위를 벌이기까지 하였다. 정작 폭력은 그들의 구호가 아니라 위선에서 나왔다. 어느 대학 주변마다 꼭 한 개씩은 락카페와 사회과학 전문 서점이 있었지만 경영난을 겪는 건 하나같이 후자였다. 꺼지기 직전에 촛불이 가장 밝게 타오른다는 사실쯤이야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래도 부채감 때문에 당당히 도서관으로 들락거릴 수 없는 자들은 술집을 전전하며 불온한 농담만을 즐기곤 하였다.
내가 대학생이던 세기말까지도 용케 학교 앞에 사회과학 서점 한 곳은 살아남아 있었다. 아마도 그곳의 주인장은 자신이 전과 몇 범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뒤 집행유예로 석방될 때마다 그 서점은 자리를 옮겼다. 운동권들의 지나친 경계심과 피해의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기말이 되어서까지 오래된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는 대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확고한 습관이나 순수한 욕망에 이끌리고 있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 심근경색을 앓고 있던 세상은 그들에게 사회 과학서를 쥐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 서점의 주인도 새로운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끝까지 사회 과학서는 포기 하지 않았지만 간판을 바꾸고 문 앞으로 구호를 떼어내고 간단한 수험서나 소설책들을 구비하기 시작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매일 주말 매장 한 곳에서 국내에 아직 수입되지 않은 희귀영화를 상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떤 시도도 잃어버린 세대들의 허무와 무관심에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책들의 무덤처럼 그곳은 늘 조용했다.
지난 주말에 대학 친구를 만나러 학교에 갔다. 약속장소를 찾아가다가 우연히 그 기억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서점이 있었던 자리엔 숯불 갈비집이 들어서 있었고 인도에까지 포장을 쳤는데도 밀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순간 옷에 배어드는 고기 냄새가 역겨워졌다. 그 숫자의 반만 채울 수 있었어도 그 서점은 그 자리를 빼앗기고 더 외진 곳으로 옮겨가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이었던가, 그곳에 들렀다가 끝내 빈손으로 나왔던 걸 후회한다. 졸업을 앞두고 영어 문제집 대신 사회과학 서적이나 소설책을 사는 일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오래된 친구들에게 고해성사를 했다. 그들은 웃으며 오래된 분노와 정의들을 기억해냈다. 그럴수록 우리는 취해갔다.
문득 어떤 친구가 말했다. 인간이 멸종의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인간의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현재의 과학이 극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한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는 신앙인도 과학도도 아니었다. 더 이상 화석연료의 사용을 중지하는 국제협약을 채결하는 순간 오염된 환경으로부터의 역습은 막게 될 것이라고. 석유는 오로지 플라스틱 생필품을 만드는 데에만 사용되어야 하며 아마존의 밀림을 보호하기 위해서 브라질 정부에 분담금을 내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종이를 얻기 위해 나무를 베는 일도 하루빨리 중단해야 해. 그전에 대마를 키우는 걸 합법화해야겠지. 대마 알지? 그 잎으로 종이를 만들 수가 있는데 그렇게 만든 종이의 질이 나무로 만든 것보다 더 좋다는 거야. 게다가 대마란 식물은 어디서든지 빨리, 그리고 잘 자라니까 경제성은 충분히 있어. 그런데, 그 잎을 말아서 피우려는 인간들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대마 재배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합법화 될 수 없겠지. 몇 그램의 신경세포들만이 기억할 수 있는 찰나의 환각을 위해서, 책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관통할지도 모르는 심신의 희열을 어리석게도 포기하고 있단 말이야. 난 그게 너무 억울하고 안타까워.
그 말을 듣는 순간, 한때 사회과학 서적이었던 곳에서 숯불로 돼지 갈비를 굽고 있던 자들을 떠올렸다. 만약, 종이를 추출하는 경우에만 있어서라도 대마 재배가 합법화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도 그 서점은 없어졌을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서점에 들러 가능한 한 두꺼운 책을 골라 값을 지불할 것이다. (실용서적에 비해 사회과학 서적들은 대개가 두꺼운데 그 이유는 실용서적에는 저자와 편집자의 전략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자신의 자취방으로 들고 가서는 한 장 씩 태우면서 환각을 들이킬 것이다. 마치, 매일 영어 사전을 한 장씩 찢어 그 속의 단어를 외우고 암기가 끝나면 그걸 삼켰다는 어느 영어학자처럼. 문자향서권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울 것이고 황홀경을 독송하는 소리가 악머구리처럼 들끓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책이 더 잘 탈 수 있도록 종이의 두께와 잉크의 성분을 결정하게 되겠지. 분서焚書의 역사는 당신들의 생각보다 깊다.
2004. 8.30. 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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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건네준 초대권 덕분에 재즈 공연은 잘 보았습니다. 서울로 올라오고도 한 달 동안 연락없이 지내다가 불쑥, 마치 채권자인 양 사무실에 나타나서 손을 내미는 제가, 공연 내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면서도 엉뚱하게, 초대권이란 마치 '행복추구권'이나 '존엄권'처럼 <가난한 예술가들이 예술가들로부터 초대받을 권리>라고 메모장에 썼답니다. 아, 뻔뻔함이여.) 헛된 약속들만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죄송하고 그날 술자리를 가지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대신 대동하고 갔던 옛직장 동료에게 예술가 행세를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나른한 평일 오후쯤 형을 찾아가 보는 것도 괜찮을 것아요. 재즈 시디 들고, 사진기와 녹음기 들고. 그래도 헤이리 축제는 끝나야지 여유가 생기겠지요? 형과의 술자리를 기다립니다.^^;;
막막했던 귀가 길, 고등학교 때 이후
이름도 가물가물 잊어버렸던 회수권을 내고,
전에 그 얼룩말무늬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뒷정리하는 거라도 좀 도와 드리고 올까, 했는데
여차저차 해서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지만
아직도 여전히 생각보다 너무 먼 헤이리.
그곳의 하루 여정이 여행처럼 느껴질 만큼,
세계민속악기 박물관의 오카리나 강습회 같은 건
아쉽지만 그만 잊어버려야 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