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넝쿨
박시은
오늘도 담쟁이 넝쿨은 담을 넘지 못했다
따순 햇살 속에서도 쉽게 손끝을 다치며
바람 부는 날들이 잦아질수록
제 한 몸 던지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담벼락을 마주한 좁은 돌담 사이를
푸른 희망의 엽록소들로 물들여 갈때
차가운 그늘을 담 밑으로 드리운 채
잎새들은 시간 속에 바래지고 있었다
절망은 언제나 그늘 밑에서 같은 높이로 자라고 있었다
밤 늦게 울어대는 개짖는 소리에도
허공을 떠돌며 노래하던 새소리에도
잎새들을 다치곤 하였다
욕정을 목태우다 어두운 골목길 속으로 사라진 여인도 있었고
열망의 바리케이트 앞에서
한치를 넘지 못해 망설였던 사내도 있었으나
골목의 슬픔은 담쟁이 몫이었다
바람은 왜 좁은 골목 사이에서 세차게 흐르는지
밤하늘의 별빛은 왜 어두운 틈바구니에서 더욱더 솟구치려하는지를
담쟁이 넝쿨은 알고 있었기에
떠나오고 싶은 마음일수록
고통은 늘 대못처럼 한곳에 쿡쿡 박혀 머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五 尺 남짓한 좁은 골목 사이를
뿌리채 드러내며 끝내 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