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일기
詩 이상국
새벽 한기에 깨어 마당에 내려서면 녹슨 철사처럼 거친 햇살 아래 늦매미 수십 마리 떨어져 버둥거리고는 했다. 뭘 하다 늦었는지 새벽 찬서리에 생을 다친 그것들을, 사람이나 미물이나 시절을 잘 타고나야 한다며 민박집 늙은 주인은 아무렇게나 비질을 했다.
주인은 산일 가고 물소리와 함께 집을 보며 나는 뒤란 독 속의 뱀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서럽도록 붉은 마가목 열매를 깨물어보기도 했다. 갈숭어가 배밀이를 하다가 하늘이 보고 싶었던지, 어디서 철버덩 소리가 나 내다보면 소리는 갈앉고 파문만 보이고는 했다
마당 가득한 메일이며 도토리 멍석에 다람쥐 청설모가 연신 드나든다. 저희 것을 저희가 가져가는데 마치 도둑질하듯 다람쥐는 살금살금, 청설모는 덥석덥석 볼따구니가 터져라 물고 간다
어느덧 저녁이 와 어느 후미진 골짜기에 몸을 숨겼던 밤이 산적처럼 느닷없이 달려들어 멀쩡한 집과 나무와 길을 어둠속에 처박는 산골, 외롭다고 풀벌레들이 목쉰 소리를 하면 나는 또 산 너머 세상의 의붓자식 같은 내 인생을 생각하며 밤을 새고는 했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창작과 비평사 -이상국- (6000원)
Ps : 내일은 식목일이다. 나는 아직도 식목일에 나무를 심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해마다 이 날이 오면 나는 무엇을 했던가. 나무는 연신 내 방 창문 밖에서 살랑살랑 나뭇잎을 바람에 흔들리며 촉촉한 봄비가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 왠지 저 초라하게 밑동이 잘린 나무가 그 옆에 작은 가지 끝으로 새 잎을 줄기차게 뻗는 걸 보면 아직도 나는 살아서 꿈틀거린다고 잔인한 이 계절에 머리에 푸른 머리띠를 매고 대모를 하는 것만 같다. 그러니 나의 뿌리마저 뽑지 말라고 불소시게 더미 속에 같이 묻혀가기엔 난 아직도 젊고 싱싱한 이파리를 틔울 여력이 남아 있다고 마른하늘 장천에 생떼를 쓰는 듯 싶기도 하다. 이 글을 읽으면 난 왜 윤동주가 떠오르고 나타샤에게 당나귀를 타고 마가리에 가서 살자고 한 백석이 떠오르는 걸까. 한편의 시 속에 슬픔으로 모든 것을 담기엔 난 아직 어리고 앞으로 가야할 길이 내 앞에 산더미처럼 수드륵 하지만 행여 두려움 앞에 떨거나 망설이며 물러서지는 말자. 그리하여 내일 나무를 심지는 못할지언정 길가에 자라는 나무 밑 둥에 얹혀진 돌멩이라도 치워주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봄이 어떨까.
식목일 시골에 갔었습니다. 아버지 묘지의 잡풀들을 호미로 매면서 잔디 사이로 뻗어간 질긴 뿌리에 새삼 놀랐습니다. 사는 게 다 그런 것이겠구나, 어디다 나는 뿌리를 내렸을까, 돌아오는 내내 라디오에서는 산불이 일렁거렸고 무너진 절터의 범종 소리가 맴돌았습니다. 식목일 내내 나무를 심지 못한 채 뿌리만 뽑다가 돌아온 손톱 밑이 황톳빛입니다. 호미에 덜컥 걸렸던 것은 누구의 그리움일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