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걱실걱실 꽃이나 한아름 안고 오거나
잔뜩 찌푸린 황사를 앞세우거나
봄처럼,
그럴싸한 무기를 못 들고 왔습니다
한동안 다른 사람들의 집을 찾아가는 일이
괴롭고 부끄러웠습니다
이해하실지 모르지만,
금방 사라지는 새들이나
지친나를 맞으며 빠각빠각 신음하는 저녁의 문이나
썩은 대기를 가로지르는 구름의 비행 따위
을을 노예취급하는 갑의 횡포라든가
나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세금의 날개라든가
새벽에 만져보는 곤히 잠든 마누라의 이마라든가
이런 모든 형태나
비시적 흔적들을 글로 옮겨적는 작업이
적절한 형태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2.
그러니까
말하자면, 내부를 가질 수 있는 껍질,
말의 집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무수한 소리와 무수한 얼룩과
혼탁한 호흡들만 무질서하게 떠서 흘러다녔습니다
차라리 유물론적 도그마를 이해할 것 같은
그러나 너무나 관념적인,
봄입니다
3.
연두,
연두라는 말
참 좋습니다 녹색도 아니고 초록도 아닌,
연두색 대문,
연두로 쓰여진 ...우회로에 있다
날이면 날마다 더 어둡게 침잠해가는 저의 거처에 있다가
잠깐 마실을 나옵니다
연두 같은 부드러움과 연두 같은 그리움
연두 같은 말과 연두 같은 시들
연두의 얼굴들과
연두의 웃음과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석
연두와, 행복하시길 빕니다
저는 보라색에 광적인 사람이라
연두색은 색으로도 빛으로도 취급을 안했거든요.
그런데 천서봉님의 글을 읽다보니
왠지 연두가 은근한 게 멋있어 보이고 정겨워 보이고
돋아나는 새싹처럼 희망이 솟아날 것 같고
짝사랑을하고 싶은 마음도 슬쩍궁 생기려고 합니다.
이런 게 아마 감동이라 하겠지요.
그러고 보니 올해는 패션쪽에서도 연두 내지는 초록색이 대유행한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