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숫자의 무게
십일월이 얼마 안 남았다
벽의 기운으로 기댄 달력이
가벼운 웃음으로 손 저으며 외롭다
봄으로 든든하게 시작하여
엊그제까지 가슴 저리며 머물던
까만 숫자의 무게가
하나 둘 사라지고 빈칸을 지키는
남은 십이월의 숫자들이 흔들리며 설움이다
초승달이 기울 때마다 빛바랜
얼굴을 뜯겨가며
가냘픈 추억을 힘들게 붙들고 남아 주었다는 것,
삶의 뒤안에서 바라보는 세월의 인내가
우리, 즐거운 날을 기억하게
펄럭이는 달력,
그것은 그리움의 시간이다
다만 남은 혼자의 겨울이
얼마나 기쁜 축복의 봄을 데리고 올지
궁금하다
글/박종영 * 영상/작은새 사진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