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소식을 전합니다. 경칩 전에 눈이 오더니 오늘은 비가 추적입니다.
저는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겉과 속의 경계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총체적으로 잘살아가는 것이려니합니다
오랜만에 책장을 살피다 책이 부담스러워지더군요. 이런거 뭐 필요 있다고 밥 굶어가며 읽었나 싶은.
기억을 더듬으면 국문학과를 선택한 것 부터 내 인생이 꼬인 건 아닐까 합니다. 그냥 취미 정도로 하면
그만인 것을 전공하겠다고 주제 파악 못하고 시 쓰겠다 덤빈 이십대가 안타까워집니다.
지금은 밥벌이 하겠다고 사무실에 앉아 눈깔이 빠지게 모니터와 서류를 보고 있는 내가 때로, 아주 가끔
경멸스럽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이 되어버렸습니다.
소식 남길 때 마다 칭얼거리는 내용이라 부끄럽습니다. 이것도 철면피와 묘한 심리적 작용인 것 같습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꽃이 피고 마음은 다시 다른 방향으로 길을 잡겠지요.
계절도 이제 조명을 조절해가며 봄을 맞는가 봅니다.
그러나 얼마 후면 황홀하게 피었다 지는 꽃들의 사치와
흐드러진 잎들의 관성에도 무감각해지겠지요.
안경식 씨도 잘 지내셨지요?
성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자신의 육신과 정신을 시간에 묶어
일상으로 귀양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 서른이 빚진 것은 청춘 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안타까운 것이 많아서 삶은
GPS처럼 제 위치를 인생에 수신하는지도 모르고요.
그래요, 봄이 오고 나면 그동안 지나쳐왔던 길이
새로운 이끌림으로 재설정 될 것도 같습니다.
오로지 직진만이 옳다던 사람들에게는
그 호젓한 풍경이 없습니다.
책과 문학에 있어서만큼은
좀 더 쓸쓸해지시고
좀 더 외로워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