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름저녁
하루내내 어디서 놀다
저녁이 다 되서야
서쪽 하늘부터 핏빛 실크벽지를 바르시나
게으른 도배쟁이여 그러다 일당을 받아 가시겠는가
누군들 저녁이 되면
고단한 제 육신을
가장 사랑했던 인간의 품에 구겨넣고 싶지 않겠는가
따뜻한 불빛을 찾아가는
어둔 숲 속의 뭇 벌레들에게
그 불빛이 무덤이 되는 늦은 저녁,
주머니속엔 호두알처럼 오늘 따온 몇 개의 배신의 말들이
굴러다닌다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그 모든 것들이 언젠가
헤어지게 될 때 꽂을 마지막 칼을 가는 힘으로 사용되고
불안이 가장 흔한 간식이 되는
밤이 오고 있다
눈물, 아니면 강물에라도 담궜다 나온 말들이 흘러나오던
그 많은 입술들은 이제 어디갔나
누가누굴 용서했다는 전화가 가끔씩 오고
그런 저녁에는 거짓말 사전이 더 두꺼워지고.
누군든 저녁이 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이불을 깔고 싶지 않겠는가
즙이 나오도록 껴앉아
나는 인간도 아니다는 대낮의 상념에 즐거운 채찍질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냥 이 한 몸
따뜻한 불빛이 되어
벌레들의 무덤이 되는 동안
배신당한 자들, 결별의 편지를 들고 있는 자들,
오갈데가 없는 자들이
편한 여름 저녁 잠을 잘 수 있었으면
배신도 용서도 없는 꿈을 꾸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