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버찌

2022.06.17 09:21

윤성택 조회 수:396

검은 줄만 알던 버찌를 나무 아래서 올려다봤다.

초록 노랑 주황 빨강의 열매들

바닥에 떨어져 반점이 되기까지

얼마나 공중에서 골몰했을까 싶은,

사람도 끝에 이르면 그 한 가지 감정으로

가뭇없이 추억을 물들이곤 했으리라.

처음에는 버찌가 바닥을 으깼고

나중에는 신발이 버찌를 으깨서

나는 그 으깬 자리에 얼룩이 되어본다.

끈적끈적한 접착과 집착 사이,

잎들은 한가로이 그리움을 뒤집어놓아서,

꿈에서도 별들이 버찌일 유월.

베개를 왼쪽으로 고쳐 괼 때마다

보랏빛 도는 생각이 물들어서 좋았다.

버찌를 간식으로 먹던 오래전 아이들이

이젠 밤하늘을 입 안 가득 물고 있다고.

자꾸만 버찌라고 발음할 때마다

찌릿찌릿한 이 느낌을 뭐라고 해야 할지,

무른 속이 터지는 걸까. 버찌, 버찌, 버찌야,

너는 내가 어떤 색일 때 처음 보았니?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42 영화로운 2024.01.26 392
141 보랏지다 2023.12.28 391
140 냉장고 2023.09.07 387
139 poemfire.com 2023.05.10 405
138 시나리오 2023.02.24 387
137 소포 2023.01.18 386
136 받아 두세요 일단 2022.12.21 388
135 태내의 멀미 2022.08.09 490
» 버찌 2022.06.17 396
133 달을 깨 라면 끓이고 싶다 2022.05.24 387
132 봄 낮술 2022.04.27 388
131 시간의 갈피 2022.04.19 388
130 음악 2022.03.23 388
129 시시때때로 2022.02.23 387
128 가고 있다, 그렇게 새벽이 2022.02.12 388
127 겨울에게 쓰는 편지 2022.01.05 420
126 시고 시인 2021.12.01 388
125 버퍼링 2021.10.06 388
124 서해 바다에 가서 저녁놀을 보거든 2021.09.13 389
123 허브 2021.08.25 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