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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9 14:41

윤성택 조회 수: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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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하다 역기 모서리에 정강이를 부딪쳤다. 별것 아니라 여겼지만, 이내 피부 아래에서 검붉은 자국이 올라왔다. 거기서 천천히 푸른빛이 감돌더니, 하루가 지나자 선명한 보랏빛이 되었다. 그 멍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문득 꽃과 닮았다. 처음엔 미미한 통증으로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짙어지고, 한껏 부풀어 오르며, 마침내 사라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니. 멍과 꽃은 같은 시간을 산다. 다만, 멍은 몸에 피어나고 꽃은 공중에서 핀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러면서도 상처가 꽃이라는 그 흔한, 그래서 진부한 이 발상이, 왜 나를 진지하게 하는지.

 

삼월은 자주 부딪치는 계절이다. 몸이 마음보다 빠르게 앞서나가다 탁자에 부딪치고, 너무 투명한 유리문에 머리를 박기도 한다. 상처를 입어야만 피어나는 꽃. 그러니 사랑했던 기억, 잃어버린 순간, 닿을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것도 멍과 닮았다. 그것은 추억 아래에 피어나고, 한동안 아리게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그러다가도 문득 어떤 감각이 스치면, 다시 붉게 되살아나는 것도 닮았다. 아린 곳이 꽃이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리다는 건 결국 나를 알아채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므로.

 

봄바람에 부딪친 망울이 꽃으로 볼가지듯. 살면서 부딪치고, 멍이 든다. 그것이 몸이든 마음이든. 때로는 너무 깊이 박혀 사라지지 않는 멍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부딪친다. 그렇게 멍이 반복되는 동안에도 계속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몸의 꽃이란 내가 나에게 보내는 작고 섬세한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를 기억하라고, 내게 귀 기울이라고 몸이 전하는 간절한 독백이 아닐까.

 

갑자기 이런 문장이 떠오른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상대의 가장 아팠던 흉터에 입을 맞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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