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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사람의 마음에도 관세 같은 게 붙어 있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말이 내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그런 일에도 ‘통관’이라는 절차가 있다면. 별일 아니라고 넘겼던 말들이 오래 속에 남았던 이유도, 어쩌면 거기서부터였는지도. 그렇다고 모든 감정이 허가를 받고 들어오는 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밀수처럼 슬며시 들여와 버린 감정이 더 성행하기도 한다. 마음의 법은 허술하여 다정은 종종 면세다. 다감은 자주 과세 대상이 아니다. 그렇게 누구도 모르게 내 안에서 부과되는 세율.
어떤 사람과 가까워지다가도 보이지 않는 경계를 느낀 적이 있다. 마음을 열어 보여주는 일이 상대에게는 교역처럼 여겨졌던 건지. 그러다 보니 배려가 오히려 직격탄을 맞은 적도 있다. 이렇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국경이 있다. 그럼에도 관세의 일정 부분은 나 자신에게 향해 있다. 사람의 마음을 값어치로 매길 수 있을까, 라는 발상 자체에서 오는 거북한 기류. 그건 내가 누군가를 대하면서 속으로 셈하려 했다는 사실.
그렇다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일보다 버거운 건, 건네는 일이다. 상대의 반응을 가늠하는 사이, 감정을 단속하다 보면 결국 말문까지 닫고 만다. 손해 본 적 없이 살았다는 건 애초에 충분히 가까워지려는 적이 없다는 뜻일지도. 적당한 거리에서 무사한 마음만을 지켜내는 일. 그게 때론 관계의 무역 같아서,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인 척. 이러한 마음의 관세는 과연 스스로를 보호했던 것인지 아니면 고립되어 갔던 것인지.
아무것도 재지 않고, 그냥 흘러가게 두는 마음으로 산다는 거. 벚꽃도 남쪽에서부터 햇볕이 옹호한 대로 꽃잎을 흩날리며 왔다. 그 무한한 자유무역에 나는 망연히 시선을 둘 수밖에 없다. 꽃들의 관세는 감상주의에 의거하여 봄에게 관리되고 있다고. 어찌 보면 마음은, 누군가의 환한 계절 앞에서
통관을 기다리는 미결의 꽃봉오리이지 않을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