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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은 언제부터인가 ‘쉼’과 연관되기보다는 ‘피함’과 연결되어 생각되기 시작했다. 밝음을 향한 열망은 곧 어둠의 배제를 뜻하게 되었고, 무언가를 가린다는 건 종종 자괴감을 동반했다. 하지만 나로선, 그늘을 선호하게 된 이유가 꽤 분명하다. 너무 밝은 빛에 오래 노출된 뒤로, 먹먹함이 찾아오고 나서.
진실이 꼭 눈부셔야 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자주 고개를 돌려야 했을까. 진실은 그늘 속에서 더 오래, 더 깊이 순수를 식힌다. 하지만 밝은 데는 들키기 쉬워서 자꾸 숨기려는 것들이 있다. 진실과 다른 감정이 그렇고, 기억이 그렇다. 무언가를 고백하지 않고도 고백할 수 있는 풍경이 있다면, 그것이 그늘일 것이다.
때로 나는 그늘 속에 서 있던 사람을 생각해 본다. 머물다 어딘가로 떠밀려간 사람, 가만히 안으로 웅크린 사람, 웃음을 다 쓰고 얼굴 돌리는 사람. 그들은 모두 그늘 쪽에 머물러 있었다. 지나고 나면 더 선명해지는 그 장면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어쩌면 그 기억들이 나를 더 오래 지탱하고 있는지도.
한낮 햇빛은 계속 쏟아지고, 그늘은 한쪽 벽을 따라 조금씩 이동한다. 결국 빛의 잉여가 그늘이라면, 그늘이 있다는 건 그만큼 밝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늘이 서럽지만은 않다. 어디선가 여전히 빛이 있다는 것. 그 빛을 향해 너무 오래 걷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늘 속에서 나란히 앉아 숨을 고르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 땀이 식고, 마음이 식고, 말을 식히는 동안 우리는 조금 더 자신을 알아간다고.
그리고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말이다. 그늘이 내게 무언가를 허락해 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더는 피하거나 물러서지 않아도 되는 자리 하나. 조금은 허름하지만 안온한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