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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은, 시간을 견디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남쪽에서 올라온 장마전선의 비를 이제 맞는 일 같다. 부산이나 대전에서는 이미 지나간 비인데, 내게는 이제야 도착하는 그런 지연. 늦은 밤,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듣는 빗소리. 때로는 그 지연이 여운으로 남을 때가 있다. 이미 흘러간 감정 하나가, 이 순간 감성을 적신다는 사실.
돌아보니, 더 이상 나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 게 있다. 같은 시공간에 속해 있던 사람조차, 이제는 다른 시차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서로의 속도를 가늠하지 못했으니, 결국 다른 빗속에 머물게 된 것인지. 어쩌면 ‘기억’이란 이런 시간 차의 비가 아닐까. 나는 지금도 어떤 감정을 몇 년 전에 두고 와, 그 자리에서 여전히 내리고 있는 비를, 지금 창문을 열어둔 채 듣고 있는 건지도.
삶의 많은 순간이 이 시간 차에서 비롯된다. 그로 인해 오해하고, 그로 인해 끝내 이해하게 된다. 오래전 내렸던 결정은 너무 늦은 사과가 되고, 너무 섣불렀던 결단은 새로운 해석이 되어 고개 숙이기도 한다. 늦게 도착한 이 깨달음은 지금에서야 도착한 진심일 수도 있겠다. 시간이 지나서야 가능해진 설명들. 여전히 유효하고, 여전히 뜻밖인.
비를 피하려 아름드리 나무 아래에 들기도 하지만, 비를 좀 더 맞고 싶어 그 나무 아래 다시 서기도 한다.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우산을 편 채 나무 아래 서 있어 본다. 흠뻑 머금은 빗물을, 기다렸다는 듯 내려주는 나뭇가지들. 그렇게 시간 차로 사람이 들어왔다 나갔고, 마음이 떠났다가 돌아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