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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납치

2026.01.07 14:35

윤성택 조회 수: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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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우연히 읽은 시가 저녁까지 기억에 머물면 감정이 납치된 기분이 든다. 이 극단적인 여운의 강제성이라니. 수갑을 찬 채 헬기로 이동 중인 사람, 그게 계산된 연행이라면 시는 내게서 무엇을 탐하려 했던 것인지. 마음에도 자원이 있다. 함부로 꺼내 쓸 수 없는 슬픔의 원유나 깊숙이 숨겨둔 고독의 매장량 같은 것들. 나는 시에 끌려가 재판을 받을 것이다. 얼마간 내면을 방치하며 살아왔다는 이유로.

 

이슈가 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엉뚱한 상상이 유배된 비유에 데려다 줄 때도 있다. 딴생각하다 우회로를 지나치는 것처럼, 그래서 낯선 길이 안내하는 풍경을 마주하는 것처럼.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초행길의 조심스러운 선택이겠지. 내비게이션에도 뜨지 않는 울창한 마음의 오지에 이르는 것일 테니까. 타인이라는 낯선 지형 앞에서 우리는 길을 잃으며 비로소 자신을 인정하게 되는 건 아닌지.

 

세계가 이기적일수록 시는 누구도 점유할 수 없는 동토를 내줄 수 없다. 그럼에도 당신의 문장에 연루되었다면 나는 이미 상징에 의해 장악된 셈. 주차된 차를 찾기 위해 리모컨을 누르고 다녔던 지하 1층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신호. 지하 2층에서 차가 제 위치를 알려올 때 나는 기어이 발견된 것인가, 착각의 인질에서 벗어난 것인가.

 

가끔 비문(非文)을 사랑한다. 그 맞지 않는 단어와 수식 사이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어긋난 서랍 귀퉁이에서 USB를 발견한 것과 같다. 컴퓨터에 꽂아서 폴더를 열어봤을 때의 실소. 삶도 때론 어처구니가 없어서 유실된 시간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비문들, 나의 서툰 자백들. 그 문장들이 나를 묶었던 수갑을 풀어주고 네게로 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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