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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업어가도 모른다, 잠들면. 몸이 현실에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한쪽 팔을 꿈에 바치기도 한다. 모로 누워 자다가 왼팔이 저려서 깼을 때 오른손이 타인을 대하듯 들어 올려 배 위에 얹어준다. 호스 끝으로 높은 수압의 물이 쏠리는 것처럼, 내 것이 아닌 부위를 찾으러 피가 맹렬해진다. 그러고 보면 몸을 잃은 영혼들은 또 어디로 몰려가 피가 통하지 않는 꿈을 제물로 삼을까.
아침에 일어나 팔을 주무르면서 좁은 건물 틈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태양의 혈류라고 생각해본다. 나무도 봄물이 꽃망울로 흘러드는 것을 어쩌지 못하는 것처럼, 내 몸도 시간의 배선에 놓여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생을 쓰기 위하여 감정을 끌어 장치하고 여러 가지 우연을 운명에 연결하는 일. 어쩌면 저리다는 건 꿈의 일부가 내게 눌려서 몇백 년 후의 팔을 내주는 건지도.
피가 여행이라고 여겨보는 건 가계(家系)의 이행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유전자는 얼마나 먼 미래에서 교신해 오는 건가. 아니지, 이런 긍정은 귀신이 업어가도 모를 혼곤한 꿈이지. 차라리 계보를 거슬러가 20만 년 전 아프리카 그 태초의 미토콘드리아 이브 눈동자에 비친 기척이라고 하자. 어릴 적 엄마가 그랬지. 팔이 저리면 코끝에 침을 세 번 바르렴. 한 번은 오늘이고, 두 번째는 이 말을 기억하는 날이고, 세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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