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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하게 슬픈 영화를 보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을 때 귀를 후빈다. 애국가를 되뇐다. 시선을 내려 뒤통수들을 센다. 이런 방식이, 되겠다 싶은 나름의 탈몰입이다. 고작 눈물의 유속을 느리게 할 뿐이지만, 둑이 터지지 않는다는 데서 리뷰는 침수되지 않는다. 힘에 부칠 땐 나도 몸을 두고 멍하니 순간을 방랑하다 온다. 그렇게 갔다 온 사이에 고민은 끝나 있다. 다음 장면이 이어진다.
어릴 적 깡통을 멀찍이 세워놓고 친구들과 작은 돌멩이를 직구로 던져 맞히는 놀이를 한 적 있다. 아니 그 돌에 맞은 적 있다. 아직도 눈썹 옆에 작은 흉터가 보인다. 엎어진 깡통을 바위 위에 다시 얹어놓고 걸어올 때 날아온 돌멩이, 잘못 던졌다는 피투성이 말을 들으며 나는 아뜩하게 그곳에서 사라졌다. 깨어나 보니 실밥이 꿰매져 있었으니, 대체 나는 어딜 다녀왔나. 아, 지금의 나를 살다 갔는지도.
돌이 내게로 날아왔는데 눈썹을 툭 치며 떨어지는 게 장미꽃 한 송이라면, 한쪽 귀를 후비고 있었는데 반대쪽에서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온다면, 한밤중 귀신이 잠든 나를 내려다보다 이불을 덮어주고 갔다면, 나를 아는 사람들이 모두 몇백 년 전에 나라를 구한 이들이라면, 영화가 끝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적외선 위성사진에서 시뻘건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곧 꽃비가 내릴 테니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조명이 켜졌지만
우산이 없다.
커다란 휴지통 옆 탁자에
팝콘 통과 음료 컵이 수북하다.
대신 정리해 드립니다,
신께서 캡 모자를 쓰고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