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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아침에는 손이 시리지만 이십 분쯤 걸으면 손가락 끝으로 온기가 돌며 따뜻해진다는 걸 경험상 알고 있다. 오늘도 산길을 오르며 내 안의 열기가 퍼지길 기다리는 건 몸을 믿어서인가, 시간을 견디는 일에 길들여져서인가. 살아간다는 것도 체득이라면 결국 귀결되는 죽음은 패턴이 아닐까. 조목조목 설명하기는 어려워도 왠지 나는 피로 다시 사는 것만 같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DNA가 잠시 내 몸을 빌려 걷다 가는 곳이므로.
후끈해진 손끝을 들어 보니 보일 듯 말듯 김이 오른다. 아마 허벅지에서 출발한 피가 말초 혈관을 따라 이제야 도착했다고 찌릿하게 일러주는지. 그러고 보면 모든 일에는 원인이 미래에 집중되어 있다. 중학교 때 키우던 개가 차에 치여 뒷산에 묻어줬던 일, 오토바이가 비탈로 굴러 턱을 다쳤던 일, 지금의 내가 이렇게 떠올리는 것조차 또 다른 암시라는 것을. 이 가을이 조신하고 있다. 낙엽 한 장 허투루 떨어뜨리지 않는다.
약수터에 다다라 물 한 컵을 마실 때
건너편 나무 기둥 뒤편에서 청설모가
고개 내밀고 나를 빤히 본다.
까만 눈동자,
관찰 카메라 렌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