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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로부터

2005.05.10 08:36

김솔 조회 수:288 추천:1

길이 육 개월 동안 저를 업어 키우고 있습니다.
아마도 곧 늙은 그녀의 등 위에서 내려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짊어지고 있던 바람의 집도 풀어놓아야겠지요.
그 문을 열었을 때, 오래된 제가 다시 걸어나올 것 같아 두렵습니다.
길을 걷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닮았습니다.
방향이나 속도는 없고, 방랑이나 상상만 있습니다.
가끔은 마지막 페이지 앞에서 쓸쓸해지는 것도 길의 끝에서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꾹꾹 눌러밟지 않은 길은 제 몸 안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행간을 읽다'라는 표현보다는 '행간을 걷다'는 표현이 더 마음에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항상 걸을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너무 어둡고 아득해서 버스나 배를 타야할 때도 있었습니다.
아마 그때 저는 그런 마을을 그냥 지나쳐 갔을 겁니다.
책과 연필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자르는 전통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
그들에겐 따로 이야기꾼들이 필요없답니다.
왜냐면 나무 한 그루면 그들이 살면서 필요한 모든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책을 읽지는 않지만 어느 누구 하나 지혜롭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은 자들이 나무가 될 것이라는 걸 압니다.
노인 한 명이 죽을 때마다 세상에 도서관 하나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떻습니까?
나무보단 시인과 소설가가 더 많은 건 아닐까요?
그리고도 일년에 수백 명의 이름이 이야기꾼-혹은 벌목꾼- 으로 태어납니다.
진정 한국에선 그 직업이 명예와 부를 보장해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까?
문명화된 사회일수록 근시와 작가가 많은 까닭이 있진 않을는지....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서 문성근이 변명하길,
자신은 후벼파먹을 상처가 없기 때문에 좋은 작가가 될 수 없었다,던데,
상처가 글을 쓰고 있는 세상에서 저까지 상처를 입힐 필요가 있을까요?
과테말라에서 이주간 스페인어 학교를 다니면서 생각하길,
"이 문자로 시를 쓰려면 까마득하겠구나." 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의 모국에 사는 작가들이 가난한 이유는 오직 하나,
수요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사실,
왜냐면 한글은 오직 내 나라에서만 소용되기 때문에,
그러나 가령 영어권이나 스페인어권 작가들은
한 권의 위대한 시집, 한 권의 위대한 소설만으로도
적어도 호구지책은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생각하길...전업작가가 되려면....
영어공부 열심히 해서 마흔 되기 전에 영어로 글 한 편 써보자...
혼자 주절거렸답니다.

형의 술잔이 보고 싶군요.

2005.5.10 볼리비아에서 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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