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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별을 기억함

2006.02.10 15:15

김솔 조회 수:284 추천:3

http://nyxos.egloos.com<이런 생각, 백열둘>

신경전문의인 M박사는 오랫동안 점성술사들을 연구한 끝에 그들 모두 편두통을 앓고 있으며 고통으로 우뇌에 주름이 많아지는 날일수록 신묘한 점괘를 읽어낸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권위 있는 의학 잡지와 천문학 잡지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논문을 보냈다.

"신경망을 따라 별에 이르는 법-비물질적 상태로서의 우주"

그의 주장에 따르면, 별이란, 주기적인 외부자극에 의해 활성화된 전두엽이 통증에 대한 방어기재로서 시신경의 신경물질들을 과다하게 분비하는 순간이 있는데 이때 수정체의 마비 증상으로 인해 눈앞에 별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데, 별이 뜨기 전에 반드시 몸에 나타나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 채 별을 관찰하게 되는 까닭은 현대인의 삶이 과도한 자극에 노출된 결과 오감 이외의 감각이 퇴화되었기 때문이란다. - 페로몬 향기를 감지할 수 있는 서골비기관(VNO)의 퇴화로 인해 인간은 대부분의 생을 짝짓기로 낭비하게 되었다고 그는 부연 설명하였다.- 맑은 밤하늘 속에서도 별 한 조각 발견할 수 없는 날이란 결국 별을 상상하기엔 신경물질이 너무 적게 분비되는 날인 것이다. 머리에 심한 충격을 받을 때마다 관용되는 “별이 보인다”라는 표현은 과학적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M박사는 천정이 유리로 되어 있는 온실에 상담실을 여러 개 마련해 두고 편두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점성술사, 시인, 의사, 천체학자 등등-에게 맑은 밤에 방문하도록 부탁했다. 그러나 곧장 진통제를 처방하지 않고 바흐나 모차르트 음악을 한 시간 정도 들려준 다음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의 수를 세도록 만들었다. 진통제를 처방한 다음 다시 위의 음악을 들려주고 한 시간 뒤 다시 별의 수를 세게 만들었다. 열 명을 상대로 같은 위치에서 동시에 실험이 시행되었기 때문에 별의 움직임에 대한 편차는 무시해도 좋았다. -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천체에 별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별의 수는 진통제와 함께 급격히 줄어들었던 것이다. M박사의 신중함은 반대의 경우까지 실험하도록 부추겼다. 즉, 그는 진통제 대신 설사약과 시끄러운 메탈 음악을 들려주고 같은 실험을 했고 두 시간 사이에 천체를 가득 채운 별 때문에 피실험인들은 비명조차 찔러 넣을 수가 없었다.

M박사는 우주가 신경물질로 빚어진 환상이라고 확신한다. 수천 년 전 그리스인들이 특별한 관측도구 없이도 카오스나 진공에너지를 발견해낼 수 있었었던 까닭도 단지 그 시간 동안 현생인류의 신경회로 자체에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학적으로 큰 진화가 일어날 때마다 우주는 죽고 태어나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고도로 발달된 관측도구에 의해서 발견되는 천체들은 그것이 우주에 실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유전적 특징 때문에 감지되는 것에 불과하며 그런 능력을 정교하게 발달시켜 온 나머지 마침내 보고 싶은 것들을-또는 이미 아는 것들을-보게 되었다는-또는 알게 되었다는-것이다. 증명할 수 없는 공리를 인정한 이상 인간의 모든 오만함은 과학의 이름으로 용서되었다. 별을 포함시킨 모든 종교와 예술은 원죄를 지닌다. 심지어 M에겐 명징한 징후를 끼치는 해와 달조차도 신경물질의 화합물일 뿐이다.

그러나 M의 논문은 다음과 같은 짤막한 편지와 함께 두 번이나 반송되었다.

"당신의 노고에 깊은 존경을 표하며, 아울러 우리의 결정마저 존중해주길 당부 드립니다. 우리가 당신의 논문을 개제하지 않은 까닭은, 그것이 거짓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불필요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아이들에게 오래 전 사라진 해와 달과 별과 우주를 기억시키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지요."

2006. 2.10 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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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기억> 속엔 빈 술잔에 담기는 것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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