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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류

2004.08.25 13:34

이파리 조회 수:237 추천:12

                        










자라나는 땅 / 2001








*보류





가끔 모든 것 밀쳐두고 버려둔다. 내버려두면 열리지 않은 내가 열리고, 하늘이 열리고, 비가 열린다. 마당이 보이고, 이파리 보이고, 대롱 뿔을 단 달팽이 옆, 신경질적으로 뒤집어진 우산, 아-아-피고름을 쏟으며 신음하는 소리가 들린다. 녹슨 체인이 밤새 바람을 으깨는 소리가 끼익-끽, 칼날이 되어 속을 헤집는다. 꿈결로도 닿아오는 너의 목소리는 목덜미 뒤로 얹혀와 촛불처럼 흐느적거린다. 차갑고 어두운 귓불을 살며시 잡아당긴다. 싸늘하고 캄캄한 나는 이처럼 환하고도 따스한 사랑을 만날 때, 너무나도 미안해져 비로소 아프다. 사랑아- 흐르는대로 두면 결 고운 머리카락, 자라는대로 푸른 이끼가 되는 시간들을 찾아 떠나려한다. 오랜 뒤뜰의 우물 속, 버드나무 잎 같이 보드랍고 여린 나의 연인아, 많이 예쁨으로 흠뻑 고여있는 너의 기억을 안고 가려한다. 지금 이 시각, 우우우, 부러지는 가을의 뼈마디 소리! 바알간 심장으로 지그시 발등을 누르는 낙엽들, 그대 닮았구나! 부디, 나를 향해 더 이상 손짓 마라 애인이여!  악수할 수 없는 이 등에는 손이 없으니,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