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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쓰기" (이해인)

네가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가
발견하고 사랑하며
편지를 쓰는 일은
목숨의 한 조각을
떼어 주는 행위  

글씨마다 혼을 담아
멀리 띄워 보내면
받는 이의 웃음소리
가까이 들려오네

바쁜 세상에
숨차게 쫓겨 살며
무관심의 벽으로
얼굴을 가리지 말고
때로는 조용히
편지를 써야 하리

미루고 미루다
나도 어느 날은 모르고
죽은 이에게 편지를 썼네

끝내 오지 않을 그의 답을
꿈에서도 받고 싶었지만
내 편지 기다리던 그는
이 세상에 없어
커다란 뉘우침의 흰 꽃만
그의 영전에 바쳤네

편지를 쓰는 일은
쪼개진 심장을 드러내 놓고
부르는 노래

우리가 아직 살아 있음을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기 위하여
때로는 편지를 써야하리

사계의 바람과 햇빛을
가득히 담아
마음에 개켜 둔 이야기 꺼내
아주 짧게라도
편지를 써야하리
살아 있는 동안은

*글을 쓴다는것 또한 나에겐 쪼개진 심장을 드러내 놓고 부르는 노래이다.

* 대학시절 친하게 지냈던 세 사람. 최영희, 조성훈선배, 친구 김남정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누구보다 세상을 진지하게 열심히 산다는 거였다.
나도 마찬가지. 내가 무심히 나만의 삶을 사는동안
영희선배는 학교 졸업후 수녀가 되었고, 남정이는 3년전부터 연락이 않된다.
성훈 선배는 얼마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소식을 일주일이나 지나서
그것도 우연히 시내를 나갔다가 친구에게서 듣고는 믿을수 없었고
그 사실이 믿기려고 할때 부터는 답답해서 미칠것만 같았다.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말할수 없었고,
그들이 있는동안은 태연하게 지내야만 했다.
가슴이 터질것 같은 삼일째
이 시를 읽고 차마 울지 못했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엉어엉... 울고 또 울었다.
옆집에서는 왠 미친 여잔가 했을것이다.

나는 수소문해 대학 동아리 홈을 찾아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이들에게 쪽지를 보내고 글도 올렸다.
영희언니의 이름도 있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내글에 대한 답이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언니는 올 한해 인테넷을 할수 없고,
내가 올린 글과 성훈 선배의 사망 소식은 서희 언니를 통해서 전해졌다.
동아리방 정보공개란에 주소는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테아 수녀님에게서 편지가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