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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에 대하여, 슬픔의 화폭

2001.06.14 08:12

조회 수:56 추천:1

15층, 20분의 노을

우리 집인 7층을 그냥 지나쳤다.
노을을 보러 가는 길이다.
태양과 서산이 충돌할 때 일어나는
결렬한 스파크의 에너지를 보러 간다.
맞은 편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노을 조망권을 빼앗겼다.
15층에서야 비로소 에너지 다발지역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손톱이 성냔이거나 부싯돌인 걸 알았다.
혓바닥은 유황 성분의 살점이었던 것을 알았다.
솜털마다 촛대의 심지가 되어 쭈볏 곤두선다.
노을 앞에 서지 않으면 나의 하루는,
나의 심장과 뇌는 꺼진 것이다.
드디어 15층,
서산과 충돌한 태양이 온 천하에
결렬함을 뿌렸다가
다시 격렬함을 몽땅 거두어 사라지는 시간은
20 분이다.
그것은 나에게 비릿한 하루의 색깔과 냄새를
진공의 빨간 캡슐로 화장하는 의식이다.
그리고 또 사랑과 자극, 그리고 애액(愛液)이
잘 배합된 완벽한 섹스와도 같은 시간이다.
노을은 나에게 성녀(聖女)의 젖가슴이다.

어느 날, 승강기 앞에 서 있는 나에게 경비원이 다가와
-15층의 여자들이 신고를 했어요.
라고 귀뜸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또 수다쟁이 아줌마로부터
- 노을 조망권을 잃지 않은 15층부터 아파트 값이 뛰었어요.
라는 말을 들었다.

도시에 살면
노을 때문에 이상한 남자로 몰리고
노을이 돈으로 환산이 되어 거래가 되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