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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72년生의 비애

2001.04.27 15:29

윤성택 조회 수:114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운동이 일기 직전에
태어난 우리들.
그래서 인간수도 엄청 많다.
어딜가나 또래 아이들 천국이었고,
국민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교실은 늘 비좁았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시 쓰여졌던 역사.
5공 정권의 화려한 등장에 대해
극찬을 하는 내용의 교과서를 배웠고,
노태우의 6.29선언 내용을 줄줄이 외워야
사회점수를 잘 받을 수 있었다.


좁은 대학문은
막판 눈치작전으로 북새통을 이뤘고
수많은 친구들이 꿈꾸던 대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으로 방향을 바꿔야했다.


선배들은 NL이다, PD다 하면서
고등학교시절 동아리방을 찾아왔고
실지로 몇몇 친구들이 위장취업을 하며
노동운동을 하다가 주민등본에 빨간 줄을 그었다.


89년이였을까. 전교조 문제가 불어닥칠 때
우리는 검은 리본을 달고 학교에 갔었다.
"선생님을 돌려주세요!"
국어 선생님이 담임이었던 아이들,
교실문과 창문을 박차고 운동장에
쏟아져 나왔다.
모두들 뙤약볕에서 "아침이슬"을 목 터져라 불렀다.
앞에 선동한 20여명의 친구들과 나 역시
유기·무기정학을 먹었다.


4지선다형과 ○×문제에 길들여져
전인교육이 아닌 입시위주의 교육 속에서
우리의 어깨는 더욱 굽어 갔었다.


돌이켜보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