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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추억에게

2001.04.14 10:19

윤성택 조회 수:93


[이재무,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문학과지성사] 시집 뒷날개에 이런 글이 쓰여 있더군요. 추억에 대해 이렇게 잔잔한 표현도 없었기에, 대신 적어 봅니다. 추억에게.


추억은 무시로 얼굴을 내밀어 가던 길을 멈추게 하기도 하고, 일몰의 바람으로 달려와 싸대기를 때리기도 한다. 추억은 밤하늘에 달빛이나 별빛으로 떠 밤길의 어둠을 쓸쓸히 쓸기도 하고, 빗물이나 눈[雪]이 되어 잠 못 드는 창문을 두들겨대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추억은 동앗줄이 되어 일상을 묶어오기도 하고 물결이 되어 온몸을 덮어오기도 한다.

한때, 나는 이러한 추억으로부터 탈출을 꿈꿨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일 뿐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도피한 자리에서 되돌아보면 내 뒤를 부지런히 따라온 추억의 얼굴이 땀에 젖은 채 서 있는 것이다.

그뒤로 나는 추억을 끌어안기로 작정했다. 따라서 오늘도 나는 추억과 함께 걷는다. 걷다가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추억과 볼을 비비기도 하고 입을 맞추기도 한다. 또는 소리 죽여 울기도 하면서.

내게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살아가면서 밝은 추억이 자주 생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