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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풀물이 내 소매에도 들었나보다

2001.06.25 04:53

이정희 조회 수:49 추천:1

배추의 마음 [나희덕]


배추에게도 마음이 있나보다

씨앗 뿌리고 농약 없이 키우려니

하도 자라지 않아

가을이 되어도 헛일일 것 같더니

여름내 밭둑 지나며 잊지 않았던 말

- 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 잘 자라 기쁠 것 같아



늦가을 배추포기 묶어주며 보니

그래도 튼실하게 자라 속이 꽤 찼다

- 혹시 배추벌레 한 마리

이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꼭 동여매지도 못하는 사람 마음이나

배추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

속은 점점 순결한 잎으로 차오르는

배추의 마음이 뭐가 다를까

배추 풀물이 사람 소매에도 들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