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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축하글 - 이 찬 (극작가)

2002.03.16 17:02

윤성택 조회 수:4920 추천:83


                      윤성택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이 찬 (극작가)


  지난 해 인사동의 한 술집에서 윤 시인을 만났다.  그날의 모임은 미리
약속된 것이었지만  나는 윤 시인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따라서 그 날의
모임 자리에 그가 참석했다는 것이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그와 친한 모임 멤버의 소개로 나는 윤 시인과 인사를 나누었고, 그 자리
에서 비로소 그 잘 생긴 미남청년이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를
쓰기에는 너무 잘 생긴, 어쩌면 너무 잘 생겼기 때문에 시를 써야만 하는,
그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어울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말은 그의 첫인상만큼이나 부드러웠다.  시인들이 곧잘 드러내는
<삐딱한 예리함>을 그에게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날 그에게서
받은 인상은 평범한 직장인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친한 사람과 어울려
술 한 잔 마시는 그런 느낌뿐이었다.  며칠 후 나는 그가 쓴 시를 처음으로
읽었다.   그의 말에는 모난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없었지만 그의 시 속에는
가슴을 찌르고 살을 베는 날카로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의 시를 읽고
난 직후 나는 그의 시로부터 느낀 날카로움과 그의 실물로부터 느꼈던
부드러운 느낌을 쉽사리 하나로 결합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 두 가지의 이질적인 느낌을 하나로 결합시키기 위하여 그와 모
임 자리에서 주고받았던 말들을 하나 하나 되새겨 가면서 그의 부드러운
말투와 모나지 않은 표현의 어딘가에 숨어 있을 날카로움을 애써 찾아
보았다.  그러나 그 작업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윤 시인에 대한
두 가지 느낌을 종합하여 마지막으로 내린 결론은  그가  예리한 칼은 항상
칼집 속에만 넣고 다니는 미남 무사라는 것이었다.

   나는 윤 시인이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대뜸 축하의 말을  건네
지 못하였다. 첫 째로는 그런 일에 특히 잘 나타나는 나의 고질적인 게으름
때문이고, 둘 째로는 내가 윤 시인에게는 <딱 한 번 만난 여러 명의 낯선
사람들> 속에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cy-pen [시]란에 그의 수상작을 올리는 것으로 윤 시인의 수상에 대한
축하인사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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