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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일렉트로닉 제사장 - 강정 시인

2005.12.01 17:02

윤성택 조회 수:4924 추천:135

<어둠 속의 일렉트로닉 제사장>/ 강정/ 《시를사랑하는사람들》2005년 11-12월호


  어둠 속의 일렉트로닉 제사장

                - 강정

   시는 일차적으로 시인의 욕망의 결과물이다. 나아가, 시는 시인의 욕망이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불가능의 징표이다. 시인은 세상만사에 깃든 사물들의 숨은 법칙을 풀어내면서 자신의 숨은 욕망을 확인하지만, 동시에 영원히 비어 있을 수밖에 없는 욕망의 공동을 확인한다. 욕망을 이상이나 신념이나 사랑으로 치환해도 결론은 마찬가지이다. 시인이 시를 쓴다는 건 결국 자신 속에 담긴 미지未知의 표식들을 밝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지는 손에 닿는 순간 기지旣知의 것이 된다. 또는, 기지의 것을 자기화하려는 순간, 그것은 다시 미지가 된다.
  그러므로 미지는 언제까지나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채로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며 마음의 어두운 공동 속에 붉은 입술과 열에 달뜬 손과 물집 부르튼 발들이 넘쳐나게 한다. 미지는 다 이루어졌으되, 끝없이 부족한 어떤 것이다. 반대로 이 세상은 여전히 무언가 부족하되, 그 부족함으로 가득 메워져 있는 허방의 실체이다. 그래서 시인은 들리지 않는 걸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또는 듣고 보았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때때로 세상에 대한 배리背理로 이어지지만, 그 배리가 아니면 시인에게는 세상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상상할 것도 사랑할 것도 없는 막막한 <구멍>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다시 보고 다시 듣는다. 그리고 다시 쓰고 또 쓴다. 오로지 <구멍>을 메우기 위해, 메워지지 않는 <구멍>을 더 깊숙이 완성하기 위해.


        산소 절단기 끝에서 불꽃이 튀고 있다
        주위는 빛에 휩싸여 일그러진다
        구멍이 천천히 뚫리자
        안에서 어둠이 뿜어져 나온다
        그는 물끄러미 안을 들여다본다
        먼지와 섞여 소용돌이치는 불빛,
        번쩍이는 천둥이 일렉트로닉 기타음처럼
        검은 앰프의 구름 아래로 터져나온다
        전력케이블은 긴 기타줄로 뻗어가
        한 번도 떠나지 못한 언덕에서 코드를 바꾼다
        방음벽 아래 맨홀에는
        목수건처럼 젖은 음이 흐르고
        텅텅 구멍은 규칙적인 망치소리로 요란하다
        시간은 평행한 파이프와 같아 몇 천 년 전
        아득한 먼지가 내려앉는다
        그리하여 바람에 떠도는 기름먼지도
        힘을 다해 움켜쥔 분자의 기억이다
        전생애를 뚫고 온 불꽃은 어두운 허공에서
        구멍을 닫는다 쇳조각이 사다리 아래로 떨어져간다
        자꾸만 그의 눈에 묻어나는 반점이
        오랫동안 푸른 항성으로 떠 있다
        어쩌다 비틀린 틈에서 빛이 비치면
        먼지기둥이 악보를 그린다
        별은 무서운 속도로 먹구름 위를 돌고 있지만
        철판과 파이프가 부유하는 터널은 검고 깊다
        지하철 제13공구,
        헬멧을 쓴 방진마스크의 그가
        음악처럼 망치를 내리쳐서
        저녁의 비가 한동안 더 내릴 것이다

                                - 윤성택, 「한밤의 제우스」

  여기서 암흑의 공간을 상상해 보자. 암흑 속에 소리의 파동으로 형성된 어떤 공간에 대해서. 암흑에서 어떤 형태가 빚어져 나온다면 그건 빛의 형태를 띠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빛은 즉물적이기는 하나, 실재하진 않는다. 실재의 것이 아닌 빛, 또는 소리. 그 빛은 실재와 실재 사이의 허방에서 뿜어져 나온 역설적인 <어둠>과도 같다.
  윤성택의 시를 읽다보니, 단순히 사유의 밀도나 감성이 증폭되는 것을 초과하여, 모종의 인식론적인 파열이 발생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이 세상의 어둡고 작은 파동들이 세계 전체의 거대한, 숨어 있는 에너지를 촉발시키는 매질로써 작용한다는 것이다. 위의 시에서 <먼지와 섞여 소용돌이치는 불빛>은 고정된 음계를 갖지 않은 채, 모든 가능한 음들의 총체적인 종합으로 나아간다. 그 종합은 시인의 감각적 포충망 안에서 반半작위적으로 운용된다. 그 순간 시인은 코드의 창조자인 동시에, 코드의 파괴자이다. 또는 파괴 자체가 코드화되는 순간, 홀연 다른 운지법으로 전환하여 스스로를 모든 음계로부터 이탈시킨다. 왜냐하면, 소리는 필연적으로 <구멍>을 낳기 때문이다.
  소리의 공명이 극대화될 때, 모든 음악은 돌연 침묵을 닮아간다. 때문에 <불꽃>의 절정에서 소리는 <규칙적인 망치소리로 요란>한 <구멍>으로 변한다. 그 <구멍>은 애당초 그 어떤 소리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듯 <규칙적으로> 울린다. 모든 소리의 반복은 의미의 무화를 지향한다. 그럼으로써 존재와 존재 사이, 세상과 자아 사이, 침묵과 진동 사이의 거대한 허방이 드러나게 만든다. 이 때, 시인은 팽창하는 감각의 어느 지점에 자신이 부여하고자 하는 어떤 형상이나 상징물을 덧씌운다. 그건 혼란스럽게 명멸하는 소리에 나름의 질서와 필연성을 부과하려는 의식적인 안간힘과도 같다. 사실, 지하철 공사장의 소음을 새로운 대지의 음악으로 듣고자 하는 욕망은 무모하고도 외로운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외롭고 무모한 만큼 어떤 절대성에의 전면적인 경도가 발생한다. 윤성택의 경우, 그 절대성의 화신은 <제우스>이다.
  <번쩍이는 천둥>을 <일렉트로닉 기타음>으로 치환하는 시인에게는 <제우스>는 소리의 검고 깊은 <터널>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어둠의 집정관이자, <분자의 기억>들 움켜쥔 채 어둠 속의 딴 세상을 불 밝히려는 시인의 페르소나가 된다. 그러나 그 페르소나는 <제우스>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장엄하지도 웅장하지도 않다. <전생애를 뚫고 온 불꽃>처럼 나타났다가 <아득한 먼지로 내려앉>는 그것은 새로운 소리를 낳기 보다는 <구멍>의 확장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 그것은 차라리 <기름먼지>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것이 21세기의 지하철 공사장에 강림한 고대의 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몫이다. 소리는 <구멍>이 필연적으로 가지게 마련인 <어쩌다 비틀린 틈>에서 비로소 탄생한다. <지하철 제13공구>에 출두한 제우스의 역할은 <구멍> 깊숙이 들어가 그 <틈>을 발견하는 데 있다.
  그 <틈>은, 마치 자본주의 시스템이 그것이 내포한 치명적인 맹점에 의해 유지되고 관리되듯, 기존재하는 사물들의 법칙들 속에 내재해 있다. 그러나 그 내재성은,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다가 돌연 기괴한 형태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외계의 사물처럼 취급된다. 그때, <주위는 빛에 휩싸여 괴이한 모양으로 일그러진다>. 어둠 속에서 빛의 형태로 출몰하는 소리는 모든 사물의 근원을 재조직하면서, 세계의 질서를 먹어치우는 외계의 괴물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그렇듯 암흑의 소리들로 교직된 세계는 비록 <기름먼지>와도 같이 미미한 현실의 일부분에서 출발할지언정, 그 파장은 우주적인 무한공간까지 닿아 있다. 따라서 그것은 곧 한 시인이 감각적으로 체험한 우주의 형태를 잠정적으로 예시한다. 그런데 우주는 어디로든 뻗쳐 있으나, 어느 쪽으로도 방향을 잡을 수 없는 침묵과 암흑의 격정적인 파동의 연속체이다.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건 오로지 <구멍>뿐이다. 그 <구멍>을 잠깐이나마 닫는 건 <전 생애를 뚫고 온 불꽃>이다. 그 <전 생애>는 <전全 생애>이자 <전前 생애>이다. 시인이 듣는 소리는 바로 삶과 죽음이 일시적으로 겹치는 <전 생애>의 피드백에 다름아니다. 단 한번 왔다가 영원히 사라지는 그것을 매 순간의 열락으로 바꾸기 위해서라도 허공을 두드리는 <망치>질은 계속되어야한다. 자신만의 <검은 앰프>에 연결해 이끌어낸 소음의 연속체들이 이토록 허망하다할지라도 시인의 망치질은 바로 그 허망함 때문에 빛난다. 이 시대의 휘황찬란함이 바로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허망함으로 유지되고 관리되듯, 시인은 <구멍> 속에서 <어둠>을 뿜어내며 쓰고 또 쓴다. 시인은 여전히 마지의 발끝에 있다. 시인의 발끝에서 미지가 비로소 기지가 된다. <텅텅 구멍은 규칙적인 망치소리가 요란하>지만, 그 요란함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소리에 이 허망한 몸을 기댈 것인가.


- 강정 / 1992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 『처형극장』. 문화비평집 『루트와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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