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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서정시의 자리 / 전형철/ 《문학선》2009년 여름호

2000년대, 서정시의 자리

1. ‘서정’은 잘못이 없다

2000년대 시인들에게 ‘서정’이라는 말은 식민지 시대 이후 금기시 되어 온 ‘빨강’의 이미지로 다가 온 것이 사실이다. ‘서정’이라는 심연을 탐침하고 특정한 하나의 합의된 정의가 도출되기 전에 2000년대는 불쑥 ‘해체’, ‘감각’, ‘전위’, ‘탈주’ 등의 용어의 대척점에 ‘서정’을 자리매김 시켰다. 80년대 리얼리즘의 시대를 넘어 2000년이란 상징적인 햇수의 직전, 90년대 ‘신서정시’ 유행의 과정 속에서 본격적 논의의 ‘서정’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 현대시사의 오랜 관습상 시는 곧 서정시라는 암묵적인 등식이 90년대까지도 용인되었던 까닭이다.
2000년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판이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서정’이 끝났다거나 변했다는 주장이 제출되면서 오히려 ‘서정’은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논의는 수면 위로 급부상한다. 흥미로운 점은 ‘미래파 논쟁’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논의가 세대론으로 변질되거나 오인되었다는 점이다. 논쟁을 전투적으로 이끌던 쪽이나, 이론을 되받아 새로운 논쟁의 장을 펼쳤던 측이나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논쟁은 세대론의 양상으로 흘렀다. 때문에 서정시를 쓰거나 옹호하게 되면 나이 든, 또는 시대의 첨예한 흐름에 뒤떨어진 퇴물로 오해받기 십상이었고, 기존의 서정시와는 다른 개념의 이론을 지지하고, 이전에는 없었던 감각의 지도를 그리며 시를 쓰는 시인들은 철없는 모던보이쯤으로 치부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니까 2000년대 ‘서정’에 대해 말하는 것은 ‘너의 색깔은 무엇이냐’하는 정제성의 고백이나 커밍아웃, 또는 동의나 반동을 요구하는 문단의 프로파간다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미래파 논쟁’이 한 동안 ‘논쟁’이 없던 문단에 청량제 역할을 했으며, 그 논쟁의 양측에 서 있던 여러 논자들에 의해 하나의 문학적 담론으로 발전되어 다양한 의미 자질을 생성해 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미래파 논쟁’이 우리 문학의 자양분을 풍성하게 하는 동시에 오랫동안 ‘거시기’로 남아 있었던 ‘서정’의 외연에 대해 많은 청사진을 제시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충실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서정’은 온전히 손아귀에 움켜쥐어지지 않는다. ‘서정’이 시인들의 색깔론의 중심에서 가늠자가 되기에는 ‘서정’의 외연은 여전히 크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 경계를 확정짓기 어렵다. ‘서정’의 역사만큼이나 그 정의가 너무 방대한 까닭이며, 다른 여타의 장르와 쉽게 혼합되고 통용되는 우물질 같은 모호성 때문이기도 하다. 범위가 불가시할 정도로 넓고, 경계는 불가촉할 만큼 흐릿한 것이 아마도 ‘서정’의 본질이라면 본질일 것이다.


2. 여전히 유효한 ‘서정’의 정의와 그 벌충

어떤 용어나 장르의 구체화, 즉 “A=B”를 해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B이다. A는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지만 그것을 객관화시키기 위해 B는 여러 다른 개념으로 유비되어야만 한다. ‘서정’과 관련되어 제출된 대표적 B는 다음과 같다.
‘서정’은 음악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가사로 불리어지던 노래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 악기의 반주에 맞춰 불리던 가사들이 서정시의 뿌리로 여겨진다. 당시 그리스의 악기였던 ‘리라(Lyre)’에서 서정시를 의미하는 ‘Lyric’이 기원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동안 서정시의 기원이 ‘리리쿠스(Lyricus)’에 있다는 수준에서 논의를 건너뛴 감이 없지 않은데, 뮤즈(Muse)를 위시한 ‘리라’의 존재는 ‘서정’이 지닌 음악성을 좀 더 심도 있게 고찰하는 데 주요한 매개체가 된다.
‘리라’는 몸체와 몸체에서 뻗어 나온 2개의 막대기와 몸체와 2개의 막대기 사이를 수평으로 이어주는 가로대로 구성되어 있다. 줄은 바닥의 줄걸이틀과 위의 가로대 사이에 매여 있으며 보통 손가락으로 뜯거나 활로 켜는 악기이다. ‘리라’는 지금의 하프와 비슷한 악기라고 할 수 있는데, 특성상  빠른 속도감이 있는 곡보다는 부드럽고 유장한 음악을 연주하기에 적합한 악기이다. 원시적인 리듬의 타악기에서 현악기로의 이행은 집단적 제의에서 개인의 예술적 격조로의 전변을 의미하며 동시에 서정의 큰 특성으로서의 음악이 어떠한 것인가를 짐작하게 한다. 즉, ‘서정’의 음악은 가녀린 현의 떨림과 울림을 통해 형성된 장중하고 감미로우며 느린 템포를 기저로 한다. 유럽에서 유행한 음유시, Trouba 또한 이러한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서정’을 주조음으로 한 서정시는 행갈이, 연갈이에 익숙하다. 노래 가사였던 까닭에 휴지와 간주, 말의 규칙적인 배열과 배치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서정시는 산문이 지닌 어법과는 다른 자리에 서 있다. 자칫 ‘산문시는 서정시가 아니다’라는 식의 논법은 경계해야 하지만 산문성과는 변별되는 지점에 서정시의 근본적 특성이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 현대시의 발전과 더불어 내면화된 음악적 자질은 서정시를 지탱하는 주요한 특성임을 틀림없다.
다음으로 ‘서정’은 동일성을 바탕으로 한다. 서정시는 일반적으로 시인의 주관적 정서나 그 내적 체험의 세계를 드러내는 시로 명명된다. 시의 분화 과정 중 서사시, 극시 또는 서사적인 시, 극적인 시로 불린 장르들이 존재했으나 앞서 언급한 장르와는 달리 압도적인 비중으로 서정시가 존재했다. 이때 서정시는 객관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서정적 자아가 겪는 사건을 내면화하여 주관과 객관을 융합한다는 점에 그 변별점이 있다. 주관과 객관의 융화는 곧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으로 치환되기도 하며 에밀 슈타이거의 회감(回感; Erinnerung)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세계와 자아의 관계 에서 자아나는 감정 상태가 ‘서정’의 핵심인 것이다. 때문에 ‘서정’은 지성보다는 감성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2000년대 ‘서정’의 정의에서 가장 큰 균열이 일어나는 부분이 이 동일성의 문제이다. 서정의 역사가 유구한 만큼 ‘서정’에 있어 동일성의 문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절대명제로 통용되었다. 그러나 근대 사회가 소비 사회, 후기자본주의 사회 등으로 변모되면서 동일성은 현실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기 어려운 개념이 되었다. 엄밀히 말해 이 시대는 비균질적이고 비통일적이고 비동일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0년대의 ‘서정’은 ‘동일성’을 완강히 고수하려는 자세에서 한 발 후퇴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여전히 ‘서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동일성으로 회귀하려는 강한 인장력이 2000년대의 시에 내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간 상실과 부재의 시대에서 고발과 절망에 수준에 멈추지 않고 회복과 위안의 고귀한 가치에 대한 반성적 자세와 의지가 서정시에 내밀하게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회귀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성이 존재하는가, 또는 그런 감성을 시로 구체화시킬 수 있는가를 믿는 또는 꿈꾸는 자가 2000년대 서정시인일 것이다.

… 중략 …

4. 도시의 경계에 선 자

이론과 실제의 사이에는 단층이 존재한다. ‘서정’이 구현되는 방식은 기실 유형화하는 순간 또 다른 서정의 영역을 배태할 수밖에 없다. 산문성과 대별되는 음악적 서정성, 해체와 대비되는 동일성의 문제 또한 ‘서정’을 서술하는 만능의 키워드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것은 ‘서정’의 최소한의 조건과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서정’을 바탕으로 한 2000년대 서정시는 그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 2000년대 서정시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서정시의 자장 안으로 도시라는 삶의 장소가 편입된다는 점이다. 도시의 첨예한 삶과 부딪히고 있는 서정 시인들은 ‘서정’의 문법으로 그 도시를 노래한다.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은 어둠으로 가득 차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지만 그 안에서 전통 서정이 지니고 있던 서정적 언어를 차용해 동일성을 꿈꾼다. 그러나 그들의 ‘자아와 대상의 일체화’는 전통 서정의 천의무봉이 아닌 거리를 지니며 ‘서정’의 기원과의 차이를 감내한다. 완벽과 불완전, 평화와 불안의 단층에 끼인 자들이 2000년대 서정시인의 또 다른 퍼소나이다.    

             춥다, 웅크린 채 서로를 맞대고 있는
             집들이 작은 창으로 불씨를 품고 있었다
             가로등은 언덕배기부터 뚜벅뚜벅 걸어와
             골목의 담장을 세워주고 지나갔다
             가까이 실뿌리처럼 금이 간
             담벼락 위엔 아직 걷지 않은 빨래가
             바람을 차고 오르내렸다
             나는 미로같이 얽혀 있는 골목을 나와
             이정표로 서 있는 구멍가게에서 소주를 샀다
             어둠에 익숙한 이 동네에서는
             몇 촉의 전구로 스스로의 몸에
             불을 매달 수 있는 것일까
             점점이 피어난 창의 작은 불빛들
             불러 모아 허물없이 잔을 돌리고 싶었다
             어두운 방안에서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을 때
             나도 누군가에게 건너가는 먼 불빛이었구나
             따스하게 안겨오는 환한 불빛 아래
             나는 수수꽃처럼 서서 웃었다
             보일러의 연기 따라 별들이
             늙은 은행나무 가지 사이마다 내려와
             불씨 하나씩 달고 있었다

                        -윤성택, 「산동네의 밤」 전문

윤성택의 시 또한 도시의 현실 안에 지어진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는 대상과의 일체화를 꿈꾸는 자아의 모습이 비교적 적실히 드러나 있다. 그럼에도 시인이 파악하고 있는 현실의 모습은 기본적으로 “춥다”. 집들은 작고, 걷지 않은 빨래가 있으며,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들이 있다. 도시의 주변에서 쉽게 발견되는 이 익숙한 풍경은 사회의 부조리나 구조적인 모순을 파헤치던 리얼리즘 문학의 잔상이 묻어난다. 이 시는 ‘궁핍’의 문제를 시의 밑바탕에 깔고 일상의 담담한 묘사를 통해 삶에 대한 위안과 희망을 조심스럽게 배치한다. 추위과 따스함, 바람과 불씨, 어둠과 불빛의 병치 속에는 세상에 대한 비애와 함께 삶에 대한 소소한 믿음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그늘인 달동네를 시의 공간으로 내세우고 있는 시인은 비록 현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았지만 현실에서 내몰린 자들의 삶 속에 드리운 파열음을 고스란히 부려내고 있다. 서정의 동일성을 지지하면서도 또는 회귀의 가능성을 믿으면서도 그 믿음 위에 번지는 예리한 빗금을 놓치지 않는 ‘도시의 경계선 자’의 서정시를 이 시는 잘 보여주고 있다.      

5. 다시, 서정에 대하여

2000년대 서정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 서정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회귀하는 쪽으로 지금도 확장 중이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탄 난쟁이”라는 보들레르의 표현은 균열되고 확장되는 서정시의 필연적 역사의 한 국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서정’ 담론은 결국 시의 미학에 관한 문제이다. 시에 있어 과연 ‘미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서정이란 무엇인가’ 또는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근원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테제이다. 이러한 질문에 무수한 이론들이 제출되었으며, 그 가운데 시 또는 ‘서정’에 대한 다양한 고찰이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범박하지만 미의 문제는 시를 쓰는 자, 또는 시를 논하는 자들의 삶의 내력과 직결되어 있다. 유년으로부터 은밀하게 쌓여 온 미에 대한 미감(味感)이나 시라는 것을 배우던 시기에 형성된 원형적인 배움의 총체가 개개인이 느끼는 미의 차별성을 낳는다. 따라서 ‘서정’은 고정되지 않고 각기 다른 관점에서 변주되고 시대에 따라서도 그 모양을 달리한다. 미래파의 ‘감각’이 기존 서정의 관습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쉽게 동의를 얻을 수 없었던 것도 그러한 까닭이며, 이 시대의 주류적 역할하고 있는 세대와는 다른 시대적 상황과 자리를 살아온 20대 또는 막 시를 접하기 시작한 10대 말의 아이들이 문태준의 전통 서정시를 어려워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내막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 ‘서정’에게는, 정확하게 말해 서정시를 쓰는 시인들에게는 예로부터 지나치게 막중한 책임의식이 요구되었다. 그것이 시인 스스로 과잉 반응한 것인지, 또는 ‘서정’의 속성상 요구되는 것인지는 확증할 수 없지만 ‘서정’이라는 용어에는 늘상 ‘인간의 심성을 고양하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식의 주문이 뒤따랐다. 시에 있어 ‘구원’은 자칫 파쇼적이거나 교조적 문법에 빠지기 쉬운 조심스러운 주제이다. 시인들이 어떤 전략을 가지고 시를 쓰던 간에 이 같은 명제는 결코 강제될 수도 없고 자율될 수도 없는 문제일 것이다. 일종의 ‘도덕률’은 현대라는 시대의 문학, 그리고 시 전반에서도, ‘서정’ 그 안에서도 많은 부분 탈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점은 흔히 서정시라고 합의되는 많은 작품에는 삶에 대한 반성적 태도나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많은 서정시는 심연의 우울과 어둠 쪽이 아닌 궁극적으로는 화해와 밝음에 세계 쪽으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고발과 징치의 순간에도 한 줄기의 활로 하나를 열어 두는 것이 서정시의 미덕이자 특장인 것이다.
서정시가 기표로서의 언어나 메타적 의미에 대한 언어 탐구의 지성적 측면보다는 감성의 측면에 많은 부분 복무하고 있는 것도 특징적인 대목이다. 서정시는 여전히 2000년대에도 ‘서정’적 언어에 빚지고 있다. 동일성의 문제에서 파급되는 ‘서정’의 언어는 일차적으로 자연어나 일상어에 가까우며, 역사적으로 오랜 동안 조탁되어온 (합의에 이른) 시어들이 주로 쓰이고 있다. ‘바람’, ‘나무’, ‘새’ 등은 시의 기원으로부터 수천 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시어로 사용되고 있지 않은가? 2000년대 서정시의 전략은 어찌 보면 ‘새롭지 않은 주제, 소재, 언어를 가지고 어떻게 새롭게 만드느냐’에 있다고 보여 진다.
시의 역사만큼 ‘서정’ 또는 서정시의 역사도 길다. 그리고 서정 시인이 만들어낸 전통 또한 유구하다. 기존의 서정에 대한 채무의식을 단 한 줌, 한 터럭도 가지지 않은 시인은 드물 것이다. 가상이 현실보다 현실다운 디지털의 시대, 서정은 차이를 인정하고 구별된 특성을 수호하며, 변주를 꿈꾸어야 할 것이다. 예술의 부침은 늘 있어 왔으나 그 가운데에서도 서정시가 건재해 여전히 작품으로 구현된다는 데 2000년대 서정시인의 고통스러운 질문과 반성 그리고 운명이 도사려 있다.  


■ 전형철 시인
충북 옥천 출생. 2007년 󰡔현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계간 <다층>편집위원, 안양대, 안양과학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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