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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온 시인 윤성택은 데뷔 5년 만인 2006년, 남다른 시각과 촘촘한 감성의 그물망으로 걸러낸 현실세계 속 각양각색의 풍경들을 담은 첫 시집 『리트머스』를 펴냈다. “잘 빚어진 시에 대한 고전적인 예술 지향과 언어에 대한 외경심을 깊이 간직한, 최근 시단의 비주류(?)의 영토를 진중하게 답파하는 젊은 시인”(김수이)이라는 평을 받은 그 첫 시집은 요란스럽지 않게, 그렇지만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첫 시집이 나온 후 7년이 지난 지금. 윤성택 시인의 두번째 시집 『감(感)에 관한 사담들』이 문학동네 시인선 045번으로 출간되었다.
첫 시집이 비정하고 삭막한 현실의 치부를 포착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주었다면, 두번째 시집이 독자들을 안내하는 곳은 ‘기억’이다. 기억은 과거의 일이지만, 존재의 의식과 무의식에 자리하며 현실에서 영향을 미친다. 시집의 문을 여는 서시에서, 우리는 그 기억의 실체에 조금 다가갈 수 있다.

한 사람이 나무로 떠났지만
그 뒷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어느 날 나무가 되어 돌아온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그때 이미 떠난 그였고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떠난 그가 남긴 유품을 새벽에 깨어
천천히 만져보는 기분,
길을 돌아보면
그를 어느 나무에선가 놓친 것도 같다
나는 얼마나 멀리 떠나온 것일까
살아간다는 건 온 신경을 유목한다는 것이다
그가 떠난 자리에 잠시 머물면서
이렇게 한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
-「기억 저편」 전문

세상을 떠나 잊혀버린 한 사람과 그를 기억하는 또 한 사람인 ‘나’가 있다. 현실에 없는 ‘그’를 ‘기억’하는 ‘나’에게 “살아간다는 건 온 신경을 유목하는 것이”자 “그가 떠난 자리에 잠시 머물면서/ 이렇게 한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기억은 한없이 무겁고 우울하다. 사라진 것을 기억하는 일이란 그리움을 감각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윤성택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담아내고 있는 ‘기억’의 저편에는 이렇듯 ‘그리움’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더듬으며 시적 자아의 감각은 공중을 떠돈다. “온 신경”(감각)을 유목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라진 것에 대한 기억은 비단 서시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그 기억의 모습을 잘 드러내주는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바로 이어진다.  

바닷속 석조기둥에 달라붙은 해초처럼
기억은 아득하게 가라앉아 흔들린다
미끄러운 물속의 꿈을 꾸는 동안 나는 두려움을 데리고
순순히 나를 통과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 이르러
막막한 주위를 둘러본다 그곳에는 거대한 유적이 있다
폐허가 남긴 앙상한 미련을 더듬으면
쉽게 부서지는 형상들
점점이 사방에 흩어진다 허우적거리며
아까시나무 가지가 필사적으로 자라 오른다
일생을 허공의 깊이에 두고 연신 손을 뻗는다
짙푸른 기억 아래의 기억을 숨겨와
두근거리는 새벽, 뒤척인다 자꾸 누가 나를 부른다
땅에서 가장 멀리 길어올린 꽃을 달고서
뿌리는 숨이 차는지 후욱 향기를 내뱉는다
바람이 데시벨을 높이고 덤불로 끌려다닌 길도 멈춘
땅속 어딘가, 뼈마디가 쑥쑥 올라왔다
차갑게 수장된 심해의 밤
나는 별자리처럼 관절을 웅크린다
먼 데서 사라진 빛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틀란티스」 전문

이 시는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를 탁월한 시적 상상력으로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기억은 경험으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수많은 경험은 다양하게 감각되어 의식과 무의식의 공간에 담긴다. 하여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처럼 기억에도 그런 망각의 대륙이 있을 법하다”고, 문학평론가 이혜원은 ‘2007년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시’에 위의 시를 선정하며 심사평의 서두를 뗐다. 그리고 이어서 이 시가 “해저로 가라앉은 거대한 유산처럼 기억의 수면을 거슬러 오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기억들, 잡히지 않지만 막연하게 그리운 기억의 잔재들을 돌아보게” 한다고 덧붙인다. 또한 “잡힐 듯 부서지는 유적처럼 닿기도 전에 가라앉는 기억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실하게 그려”지고,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에 대한 관심이 오래도록 해소되지 않고 잔존하는 것처럼 잃어버린 기억의 유적은 그칠 줄 모르는 그리움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말로 이 작품의 특별함을 설파한다.
한편, 이렇게 기억의 유적을 더듬으며 그리움이 담긴 우울한 정서를 품은 시적 자아는 시집의 곳곳에서 “피와 땀과 감정을 가진 생명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신호이거나 암호로 세계 내에 존재하”(엄경희)고 있다.

바람의 궤와 함께 이어지는 색감에서
사위를 움켜쥔 채 회전하는 윤곽,
신화의 조난 같은 새벽이 다가오는 사이
빛은 여러 개의 가설을 파먹는다

가지마다 행성을 밝히는 액정들
지금도 불 밝은 몇몇 접속자들

후둑 떨어지는 홍시의 여정을 귀에 들려주면
불면의 시공간이 채집된다

녹슨 자전거 바퀴 속을 항해하는 먼지들은
이제 외계의 답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아득히 계통에 없는 유기물로 스며든 후
나선의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을 때
감나무에서 붉어지는 봉문이 있다

핏빛 중력이 서서히 끌어당기던 언 땅 밑 항로를 가다보면
나직이 어느 불행과 조우할 수 있을까

새벽녘 얼굴만 비추는 액정에는 
파리한 안색이 걸려 있거나 주술처럼 손톱이 부딪쳐온다

별들이 지독한 건 제 빛을 보내
그 눈빛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붉은 탯줄에 매달려 양육되고
고인은 외장 하드에 검은 시신경을 연결한다

희뿌연 배경 붉은 화소의 감나무는
광속의 주파수를 따라
운명은 다만 서로 돌아다보는 거라고
나뭇가지 갈래로 뻗어가고 있다

감과 감의 경계는 응시이다
-「감(感)에 관한 사담들」 전문

표제작 「감(感)에 관한 사담들」은 모니터 앞에 앉아, 중력의 법칙대로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공중의 전파체로 바뀌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신랄하게 보여준다(“후둑 떨어지는 홍시의 여정을 귀에 들려주면/ 불면의 시공간이 채집된다”). 이제 우리의 감각은 브라운관이나 액정화면을 읽어내는 눈만 남은 것은 아닌지(“감과 감의 경계는 응시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이 시집이 시종 기억과 그리움 사이에서 우울하게 부유하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밤하늘 속 탐사선이 가없이 떠가는 상상
베개에 눌린 안구 안쪽에서 폭풍이 일고
깊이 묻혀 있던 유적이 드러난다
보이저2호에서 판독불능의 신호가 보내지면
어느 꿈이 황금음반을 틀어주고 있다는 생각
탐사선이 태양계 끝에 가 있는 것은
방안에 떠 있는 어떤 입자 속 제국에
내가 기류하고 있다는 것, 비 오는 밤
막막한 공간에 음악이 퍼지면
몇백억 킬로미터 밖 동체가 느껴진다
나는, 이 우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내게서 온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기류(寄留)」 전문

이러한 병적인 세계를 견디기 위해, 시인은 발상의 전환을 꾀한다. 
꿈의 생생한 체감을 아름답게 묘사한 이 마지막 시에서, 일종의 유체이탈(“몇백억 킬로미터 밖 동체가 느껴진다”)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분열 상태에 놓인 시적 자아는 황금음반이 들려주는 우주의 음악 속에 몸을 띄운다. 잊힌 기억의 유적을 더듬는 막막한 그리움을, 시인은 그렇게 이 세계에 기류하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고 황금음반의 음악을 들으며 견디고 있는 것이다.  

그는 따뜻한 손을 그리워하며 잔기침을 하고 차향을 음미한다. 그가 있는 실내는 외로움의 공간이지만 한편 수분과 온기를 간직한 인간적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성택의 ‘외로움’은 한 존재가 인간적 감정의 깊이로 잦아드는 휴식의 순간이기도 하다. (……) “중력과 부력 사이”를 쉼 없이 오가야 하는 존재상황을 가로질러, 검은 가면을 벗고, 내가 비로소 ‘나’일 수 있는 외로움의 순간은 비극적이지만 진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윤성택의 우울과 외로움은 바깥에서 수없이 재조직되는 거짓 자아의 중심을 벗어나 본래적 자아에게로 귀의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정념의 끈이라 할 수 있다. _엄경희(문학평론가), 해설 「중력과 부력 사이를 떠도는 우울한 파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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