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우리가 시를 믿는 다는 것은



장만호 (시인)




  솔직히 말하자. 내가 알고 있는 몇 사람들이 동인을 결성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 동인의 모토가 "우리는 시를 믿는다"는 것이라고 천명했을 때 나는 조금 웃었다. 정말이다. 조금만 웃었다. 시에 대한 믿음이 미덥지 못해서도 아니고 시인 하나 없는 동인이 우스워서도 아니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까뮈가 저 1940년대의 프랑스 문학을 두고 '우리 시대의 문학은 설득시키는 것보다 충격을 주는 것이 훨씬 더 쉽다'라고 한 그 말이 그대로, 오히려 한층 더 부합되는 시대가 아닌가. 이 동인들이 "우리는 시를 믿는다"라고 했을 때의 "시"는 분명 '충격'보다는 '설득'의 측면에 보다 더 접근한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아닌가.
  이제 시천은 세 번째의 동인집을 만들었다. 그 사이에 한 두 사람이 들고나긴 했지만 여전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고 합평회는 더욱더 치열하다. 세 명의 시인이 배출되었고 그 나머지의 미등단자들도 운이나 때를 만나지 못해서 임을 나는 알고 있다. 정말이다. 만 3년이 되지 않은 창작 집단으로서는 대단한 성과이며 미래이다.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의 믿음과 열정은 정말 '시대착오적'인 것이었던가. 설령 그렇다고 해도 분명 그것들은 '시대추수적'인 것은 아니었다. 시의 위기를 논하는 시대, 대부분의 시들이 자의식이라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 혼자의 고통을 자위하는 시대, 외로움이나 그리움을 떳떳하게 말하는 것을 낡은 것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오히려 교묘한 반복이나 중얼거림으로 스스로의 그것들을 도착증환자처럼 비벼대는 시대에 <시천> 동인들의 '믿음'은 시대착오이기에 앞서 시대에 대한 반항으로 읽힌다. 그것이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라고는 말하지 말자. 그렇게 말하기에는 이들의 시는 지나치게 건강하고 서정적이다. 또한 시는 기계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발전'이나 진보의 개념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에는 좋은 시와 좋지 않은 시가 있을 뿐이고 시의 사명은 언제나 감동과 아름다움에 있다. 만일 시에 대해 발전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시가 보다 큰 정신적이고 동시에 감각적 인 감동과 아름다움을 육화시켰다는 말에 다름 아니며 그것들을 통해서만 시는 세계에 '참여'하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새로운 것은 의외로 쉽다. 충격은 설득보다 쉽다. 이들은 단지 무수하게 빛나는 큰 별 들 속에 자신들의 별자리를 새겨 넣으려는 길을 택한 것뿐이다. 우리가 시를 믿는다는 것은 그만큼 황홀한 반항이다. 그래서 그만큼 어렵다.

……<중략>……

  윤성택 시인 역시 일상의 세부를 면밀히 관찰한다. 그는 세밀한 시선으로 일상의 다양한 모습들을 포착하고 그것들을 자신만의 인식이나 깨달음으로 바꿔놓을 줄 안다. 얼핏 진부한 깨달음의 시로 떨어질 수도 있는 이러한 시적 방법을 윤성택은 언술과 언술 사이의 여백과 연상을 발전시킴으로써 극복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깔끔하면서도 우리에게 평범한 것들에 숨어있는 본질을 깨닫게 한다.
        
          새벽부터 골목 구석구석
          햇살이 날렸다
          허리띠를 맨 끝까지 채웠던
          사내는,
          뿌리처럼 툭 불거져 나온
          닳은 속옷을 쑤셔 넣었다
          틈만 나면 살고 싶었다

                  ― 「홀씨의 나날」 부분

  공사장의 인부라는 시적 대상은 사실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 대상을 통해서 삶에 대한 집착이나 뿌리 잃은 삶의 고단함, 그러면서도 건강함을 잃지 않는 생의 의지를 보여주는 시들은 흔히 있어왔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적 대상의 평범함이나 익숙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독창적인 관찰이나 인식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윤성택의 이 시가 좋은 시가 되는 이유는 그런 것들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날리는 햇살' 속에서 "사내"는 "뿌리처럼 툭 불거져 나온 닳은 속옷을 쑤셔 넣"는다. 그러면서 맨 끝까지 채우는 허리띠는 분명 삶의 의지이다. 이러한 광경은 일상적이면서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평범한 착상을 일순간에 역전시키는 것이 다음 행의 "틈만 나면 살고 싶었다"라는 표현이다. "닳은 속옷을 쑤셔 넣었다"는 문장은 사실과 관계된 것이고 "틈만 나면 살고 싶었다"는 문장은 어떤 의지와 관련된 것이다. 윤성택은 이렇게 사실적인 관찰과 묘사를 순간적으로 어떤 의지의 차원으로 승화시킬 줄 안다. 게다가 이러한 시라는 장르가 지닌 미덕으로써의 서로 다른 층위로의 비약이 이 시에서 효과적이면서도 단절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앞의 행에 "쑤셔 넣었다"라는 서술어와 다음 행의 "틈"이라는 단어가 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쑤셔 넣는다는 것은 좁은 곳에 무엇을 억지로 넣는다는 것인데 그 좁은 곳을 대표적으로 지칭하는 것 중의 하나가 "틈"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틈만 나면 살고 싶었다"의 주체가 사내, 즉 "홀씨"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이 표현은 어떤 인식의 힘을 보여준다.

          여자들은 두 다리 둘레에 원을 그리곤 한다
          원뿔 밑면적은 길이에 상관없이 은밀한 부위,
          보라, 다리를 꼬고 앉은 저 여인
          나는 회전 중인 선풍기처럼
          갸우뚱거린다 잠시동안
          두 다리 너머 유심해진다

                             ― 「원 속의 女子」 부분

  위의 시 역시 윤성택의 시적 방법이 잘 드러난 시이다.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을 통해 시인은 재미있는 상상을 보여준다. "나는 회전중인 선풍기처럼/ 갸우뚱거린다 잠시동안/ 두 다리 너머 유심해진다"라는 표현은 어떤 인식의 힘에 앞서 매우 유머러스한 장면을 보여준다. '회전중인 선풍기'라고...? 그려지듯 가깝게 우리는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유쾌하고도 가벼운 시선의 즐거움이 여기에 있다.


                  물줄기가 쉴새 없이 합류하는 도랑엔 흰 거품이 흔들렸다. 내 어리
              숙한 생각들  몇 개의 스티로폼 조각으로 떠올랐다.  어떤 집착이었을
              까, 더께가 앉은 돌들은 죄다 흉터처럼 둥글었다. 너를 복개하는 데에
              참 많은 별들을 지웠다. 어떤 날은 팔목을 긋고 떠내려온 낙엽처럼 포
              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너를 무단 방류할 곳은 이 곳 뿐이었다.  맨
              홀을 열면  다시 깜깜한 밤이었고,  물소리 깊어지는 자리마다 가로등
              한 그루씩 자랐다. 나는 썩지 않을 것이다.
  

                                         ― 「버려진 인형」

  윤성택의 시가 가진 특징이 또 있다. 이것은 시 자체의 변별적 특징이라기 보다는 분류의 문제이다. 그의 행갈이 시는 살펴본 바와 같이 가볍거나 유쾌하다. 그렇지 않다면 건강하다. 반면 그의 산문시들은 그 주제나 표현에 있어서 보다 무겁고 어둡다. 이것은 예외없이 그렇다. 행갈이 시도, 산문시도 윤성택의 어법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나는 전자에서 윤성택의 특장이 더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분명 형식은 내용을 규제하기도 한다. 또 어떤 내용이 형식을 규제하기도 한다. 산문시의 호흡과 나열이 무거운 정조에 적합할 수도 있고 행갈이 시의 간략함과 여백이 일상의 다양한 부면을 포착하기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반대라고 이야기해도 그것은 전혀 틀리지 않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나는 윤성택의 산문시들이 주제 여부를 떠나서 행갈이 시에서 보여주었던 날카로움과 인식의 힘을 담지하기를 바란다. 그러한 장점은 시의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어디서나 드러나야 할 개성적이고 축복받은 능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여부는 철저히 윤성택의 몫이다.

……<중략>……

  어떤 생각이 세상을, 상황을 바꿔놓기 위해서는 우선 그 생각이 그것을 품은 사람의 삶을 바꿔놓아야 한다. 그 삶이 그 생각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하고 생각이 삶을 추동해야 한다. 그때에야 그 생각은 가치가 있다. 시천 동인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시의 궤적은 그들의 생각이 충분히 자신들의 삶을, 행동을 변화시켰음을 증명한다.

  인간이 신의 구원을 믿는 것처럼 우리는 시를 믿는다. 우리는 밝은 곳에 서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상아의 무덤과 같은 바다에 안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목이 좁은 여울에서 맹렬히 휘몰아칠 것이며, 어두운 곳 어디에서 존재와 마주하고 처절한 싸움을 계속해 갈 것이다. 우리는 물처럼 모여 있으나 시의 속성처럼 외로울 것이다.

                                                           ― 「시천 발기문」 중에서

  시에 대한 이들의 믿음은 두말할 것 없이 확고하다. 시에 대면하는 자세는 그들의 말처럼 "처절하고", "물처럼 모여 있으나 시의 속성처럼" 그들은 외롭다. 외로움이나 그리움을 시의 힘으로 '치환'할 줄 안다는 점에 그들의 장점이 있다. 비록 그들의 발기문에서 그들이 추구하고 믿는다는 '시'가 무엇인지 구체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누가 있어 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스스로가 시를 써가면서 스스로의 삶 속에서 구체화시키고 발전시켜야 할 영원한 화두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현명하다. 그리고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점에서 용감하다. 무엇보다 나도 시를 믿는다는 점에서 그들과 나는 동지다.



* 장만호 시인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26 장안상가 - 김홍진 평론가 계간시평 2004.11.21 3859
25 대학병원 지하주차장 - 강인한 시인 단평 2004.11.21 4098
24 FM 99.9 - 정승렬 시인 단평 2004.11.21 3873
23 무위기 - 이종암 시인 단평 [1] 2004.10.11 3812
22 고독한 자들의 합창 (2004년 『시천』 네 번째 동인지 해설中/ 강경희 평론가) 2004.10.04 3847
21 대학병원 지하주차장 - 시선집 평 中 (김백겸 시인) 2004.08.29 3758
20 '주유소' 단평 - 김충규 시인 [2] 2004.08.29 4874
19 산동네의 밤 - EBS 수능 Choice 현대문학 문제집(2004-1) file 2004.08.02 6690
18 밤의 러닝머신 - 단평 (김솔 소설가) 2004.06.18 4812
17 제10회 현대시동인상 심사평 中 (『현대시학』 2004년 6월호, 김종해 시인) 2004.06.18 4161
16 봄 - 계간비평(『생각과느낌』 2004년 여름호, 박신헌 문학평론가) 2004.06.18 4507
15 비에게 쓰다 - 이달의 문제작 시평(『문학사상』 2004년 6월호, 진순애 문학평론가) 2004.06.03 4588
14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 박해람 시인의 '포엠피아' 2004.04.22 4380
13 주유소 - 『문학마당』2003년 겨울호 계간비평 (김은정/ 문학평론가) 2003.12.12 4050
12 '주유소' 단평 (김완하 시인,『미즈엔』11월호 추천시) 2003.10.25 4030
11 '주유소' 단평 (김남호 평론가) 2003.10.10 4242
» 우리가 시를 믿는다는 것은 (2003년 『시천』 세 번째 동인지 해설中/ 장만호 시인) 2003.05.03 4402
9 2003년 詩, 오늘의 좋은 시 中 2003.03.02 5720
8 [해설] 나무 아래에서( 서지월 시인/『강북신문』) 2003.02.04 4240
7 [시평] 지옥에서 쓴 서정시(『오늘의 문예비평』 2002 겨울호 - 문학평론가 김양헌) 2003.01.06 4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