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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 지하주차장

빽빽하게 들어찬 어둠을 솎아내느라
형광등 불빛은 가늘게 떨고 있다
그 경계를 잘라내는 환풍기는
울음이 엉겨 잘 돌아가지 않는다
영원히 잠들어 있을지도 모를
이 곳을 깨우기 위해 사이렌은
입구에서 검은 침묵을 매만진다
누구나 지상과 멀어지고 싶지 않듯
지하로 지하로 차를 몰고 내려온 이는
잘못 든 길처럼 숙명적이다
그가 홀연 빠져나와 차문을 닫을 때
지하층 전체에 일순 울리는 소리,
누군가 들뜬 페인트처럼 후들거리며
벽면에 기댄다 어쩌면 통곡은
지루한 절차일지 모른다 모든 길에는
끝이 있다고 우회와 우회를 거듭하며
나선 방향으로 낙하한 하역의 공간,
지하로 내려갈수록 묵직한 나사가
조여 오고 있다 그가 못질하듯
구두소리로 걸어나간다 깊은 밤처럼
고요한 지하주차장, 길이와 폭으로
테두리를 두르던 주차선이 문득
영정 사진에 가 있다 또 누군가
차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 지하 주차장이 은유하는 죽음과 장례식장은 침묵과 어둠의 공간이다. 앰블런스의 사이렌과 시체가 올라가는 풍경이 있고 "길이와 폭으로 테두리를 두르던 주차선이 문득, 영정사진에 가 있다". 지하로 내려오는 길은 관에 실려오는 길이고 지상으로의 상승이 하늘로 가는 길인 묘한 풍경이다. 작자는 풍경에 능하다. 풍경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풍경 뒤로 숨어 있어서 그 풍경을 그림처럼 한참 들여다보아야 한다. 구상화처럼 보이는데도 추상화처럼 느껴진다. - 《새로운 문신》 대전충남 작가회의 시선집 中 / 김백겸/ 《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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