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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 99.9 - 정승렬 시인 단평

2004.11.21 11:03

윤성택 조회 수:3979 추천:92

              

                FM 99.9

        육십 촉 전구가 긴 하품처럼 흔들린다
        목젖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골목 어귀 바람은
        기댄 리어카 헛바퀴로 다이얼을 맞춘다  
        주파수를 잃은 낙엽이 쓸려간 후미진 끝
        별들의 수신음이 가득하다 별과 별
        이어보는 별자리는 전선으로 잇댄 회로,
        때로 ON표시처럼 스탠드 불빛 새어나온다
        조금씩 뚜렷해지는 스테레오 같은 창들,
        막막한 어둠 속에서 채널을 갖는다
        같은 시간 같은 음악을 듣는 이들은
        서로를 잇대며 이룬 외로운 기지국이다
        붉은 막대채널 같은 가로등이 길 위를
        밀려가고 가끔 개 짖는 소리가 잡힌다
        거미줄은 스피커처럼 웅웅거린다
        배달오토바이가 LP판 소릿골을 긁으며
        좁은 골목을 돌아 나온다 불빛에 꽂혀진
        사소한 소음도 이제는 모두 음악이다
      
        
<시작메모>
라디오를 끄지 못하고 잠든 새벽,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아련한 음악은 여전히 헛헛하다. 99년 9월, 추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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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제목 FM99.9는 우리 경기도 지역의 라디오 방송이다.
그러나 시인은 ‘99년9월9일이라는 시간의 개념으로
모티브를 절묘하게 이끌어 냈다.
이 시에서는 삶의 향기가 너무도 진하다
아니, 땀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서 삼삼하다
사람의 삶은 각 각 다르겠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거의 모두는 파도와 같은 굴곡의 삶을 경험했다고 생각 되어 진다.
살아온 시간 속에서 누구나 리어카를 끌고 언덕을 오르는 한 인간일 수 있다
때로는 힘에 겨워 몇 번의 헛바퀴질과
긴 한숨을 몇 번이나 몰아쉬며 언덕을 오른다.
이 시의 작가는 젊다.  그럼에도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세심한 경험적 사고를 리얼하게 토해내고 있다
그리고 고단한 삶을 인간의 내면적 온기와 연결하여
자연스럽게 삶을 업 시키는 마력이 있다
이 시 종부에 나타난
"배달오토바이가 LP판 소릿골을 긁으며
  좁은 골목을 돌아 나온다 "에서 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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