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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동네의 밤

         춥다, 웅크린 채 서로를 맞대고 있는
         집들이 작은 창으로 불씨를 품고 있었다
         가로등은 언덕배기부터 뚜벅뚜벅 걸어와
         골목의 담장을 세워주고 지나갔다
         가까이 실뿌리처럼 금이 간
         담벼락 위엔 아직 걷지 않은 빨래가
         바람을 차고 오르내렸다
         나는 미로같이 얽혀 있는 골목을 나와
         이정표로 서 있는 구멍가게에서 소주를 샀다
         어둠에 익숙한 이 동네에서는
         몇 촉의 전구로 스스로의 몸에
         불을 매달 수 있는 것일까
         점점이 피어난 저 창의 작은 불빛들
         불러모아 허물없이 잔을 돌리고 싶었다
         어두운 방안에서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을 때
         나도 누군가에게 건너가는 먼 불빛이었구나
         따스하게 안겨오는 환한 불빛 아래
         나는 수수꽃처럼 서서 웃었다
         창밖을 보면 보일러의 연기 따라 별들이
         늙은 은행나무 가지 사이마다 내려와
         불씨 하나씩 달고 있었다


<정답과 해설> 부분(274쪽)
나. 윤성택, <산동네의 밤>

해제 : '나'로 표상된 시적 화자의 시선이 산동네 판잣집에서 골목길을 따라 구멍가게로, 다시 밤하늘로 이어지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서사의 진술 방식과 장면 묘사의 진술 방식이 동시에 쓰인 이 작품은 '추움'과 불씨의 '따뜻함'이 대조를 이루며 가난한 삶의 고달픔과 이를 바라보는 따뜻한 연민의 정을 드러내고 있다.

주제 : 산동네 삶에 대한 연민의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