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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집 골라 읽기/ 이창수/ 《시와인식》2007년 겨울호

삶을 바라보는 형식

윤성택의 시에 나타나 있는 배경은 도시이며, 그의 시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들에게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현대인들의 경우 삶의 공간을 도시로 이주시킨 지 오래되었지만 도시의 영토 안에서 현대인들은 종종 낯선 자기 자신을 만날 때가 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사랑하는 대상을 만나고 떠나보내는 일련의 행위 역시 도시 공간에 머물러 있다. 도시의 풍경 속에게서 그는 종종 낯선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현대시의 경우 더러는 도시의 이미지가 어색하게 보일 때도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로는 우리 시에 나타나 있는 풍경들이 인공이 아닌 자연에서 그 이미지를 차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연의 이미지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도시의 이미지가 때로는 어색하게 다가온다는 뜻이다. 윤성택 시인은 자신의 시에 나타난 도시 이미지를 자신의 장점으로 활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성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차는 속력을 내면서
        무게의 심지를 박는다
        (…중략…)
        구부러진 철침마냥 팔짱을 낀 승객들
        저마다 까칠한 영혼의 뒷면이다
                                                - 「스테이플러」 부분
        
        길이와 폭으로
        테두리를 두르던 주차선이 문득
        영정 사진에 가 있다 또 누군가
        차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 「대학병원 지하주차장」 부분

이들 시는 고단한 일상 끝에 찾아온 죽음을 사물의 이미지를 육화시켜 보여주고 있다. 이 무심한 풍경은 도시의 난폭한 얼굴이거니와, 이는 도시인들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처럼 윤성택 시인은 ‘기차’와 ‘자동차’, ‘대학병원영안실’ 등 도시의 소품들 속에 숨어 있는 차디찬 일상의 내면을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냉랭한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사랑의 대상을 찾고 있다. 그런 가운데에도 때로는 도시의 반대편에서(사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자리에서) 진실한 자아를 찾기 위한 행동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두운 방 안에서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을 때
        나도 누군가에게 건너가는 먼 불빛이었구나
        따스하게 안겨오는 환한 불빛 아래
        나는 수수꽃처럼 서서 웃었다
                                                 - 「산동네의 밤」 부분


        눈동자가 물에 잠기면 다시 캄캄한 밤이었고, 물소리 깊어지는
        자리마다 가로등 한그루씩 자라났다 나는 썩지 않을 것이다
                                                 - 「버려진 인형」 부분

이렇게 찾고 있는 그의 진실한 자아는 물론 충족되지 않는 내면으로부터 기인한다. 또 다른 시에서 그가 “모든 결핍은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것이라고”(「스트로」부분) 말하고 있는 부분에서도 이는 증명이 된다. 그렇다. 예의 구절에서는 무엇보다 그의 파편화되고 결핍을 간직한 자아를 발견하고 견뎌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사내는 광장을 고스란히 기억하려는 듯 / 디지털카메라로 찡그린, 웃긴, 입 벌린, 풍경을 저장한다”(「검은 비닐 가방」부분)고 말하고 있거나, “그리움이라는 색깔로 반응하는 목소리”(「리트머스」부분)라고 말하고 있는 것 등도 고립된 현대인들의 이미지를 기억의 형식으로 저정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윤성택은 도시의 부품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을 찾으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차디찬 도시의 풍경 속에서 따뜻한 온기를 불어 일으키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종종 개성을 갖지 못하고 있는데 이 또한 주목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의 시에 이런 인물이 등장하는 이유는 계량화되고 획일화된 도시의 법칙이 인간의 다양한 차이를 방해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 연유로 그는 색감 없는 존대들에게 입힐 다양한 색감의 옷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의 시는 시사적인 측면에서 놓고 볼 때도 적잖은 주목을 할 필요가 있다. 자연의 풍경에 의존하는 시에서 도시의 풍경에 의존하는 시로 시의 배경이 옮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존적인 서정시의 전통이 그에게 와서는 도시의 풍경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후략…


■ 이창수
1970년 전남 보성 출생. 2000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물오리사냥』. 현재,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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