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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솔에게 - 너의 만연체가 말해 주는 것

2003.08.26 17:59

윤성택 조회 수:513 추천:8

  


타이핑치는 손가락에 익숙한 novel.co.kr
내 정신은 그곳을 떠나 있는데
각 손가락 끝이 문양을 더듬으며
조합해 내는 느낌.
한때 내 전부가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점심시간 사무실 세면대에서 씻어오는
열무라면이 가득 담긴 코펠.
그 쓸쓸한 허기 같은 거.

기어이 장안평을 떠나오면서
종점으로 떠났던 마을버스와
영영 이별을 한 거였지.

아주 가끔 회기동 전철역 아래
곱창집이 생각나.
취해서 오거나 오자마자 취하던 너를,
그밤 껴안아주었던 가스통은
그 집이 없어진 후 어디로 갔을까
전철이 지나는 때면 부르르
파란색 파라솔 탁자가 흔들리며
젓가락이며 술잔이며
눈동자를 흔들리게 했던 그때.

문학은 벼랑 끝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었지만
델마와 루이스처럼 환호하며
우리는 대체로 만만했던 거지.
어떤 이론도 어떤 직관도 필요 없던 때였어.
다만 서울이라는 이 낯선 곳에서
문학을 볼모로 붙잡힌 청춘이 눈물겨웠을 뿐이야.

젤을 잔뜩 발라 빳빳하고 반짝거리는 너의 헤어스타일처럼
금속의 첨탑이 솟아 있는 그곳에서 너는,
문명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강도와 하중에
문학의 척추를 눌리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친구야.
한때 너의 만연체가 말해주듯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맺혀 있는 말이 너무 많아서
소설이, 詩가 너를 포기하지 않을 것 같구나.
그러니 또 한 번 세상과 내기를 해야하지 않겠어?

노블은 지금 갯벌 같아, 숭숭 뚫린 뻘 구멍으로
살아내자고 살아보자고 제각각
추천, 필독, 초특가, !!!, 모음…,,,,,,
한바탕 조회수가 밀려와 들기를 기다리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황량한 갯벌 같은.
거기 어딘가 추억이 집단 유기 되어
찢어진 황포 돛처럼 나부끼는.
그러나 기어이 언젠가는 찾아야 할.


2003. 7. 22. 싸이월드, '글꽃'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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