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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거미] (창작과비평사) 시집 읽기

2003.04.08 17:33

윤성택 조회 수:437 추천:6




                        詩 짓기의 공식, 자연에서 삶으로
      
                                                               


  박성우의 첫 시집 『거미』는 자연의 세심한 관찰을 통한 소외된 삶의 투영이나 가난의 가족사를 잘 내면화시킨 시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박성우의 시집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 평론이나 서평에서 많이 다뤄왔던 얘기다. 물론 이런 호평이 주례사 비평쯤으로 여긴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가 나름대로의 서정과 서사를 적절하게 결합하여, 병치 및 대비로 이어지는 울림의 효과를 이뤄내고 있다고 본다. 솔직히 나는 그의 시 짓기의 공식 혹은 패턴을 겸허한 자세로 배우고 싶은 심정으로 정독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시집 제목을 살펴보면 대다수가 자연의 것으로 이뤄져 있으나, 정작 시의 내용은 우리네 삶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다시 말해 초반부는 자연생태를 관찰하고 그 시선이 삶으로 슬며시 넘어오는 방식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수학공식(자연생태+삶=새로운 해석)처럼 그의 시에서 어김없이 도식화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이 도식화는 상투성에 입각한 자신의 모방이나 타인의 모방이 아니라, 반성적 사유와 삶의 구체성이 내재된 인간이해에 따른 정서적 감응일 것이다.
  「거미」에서는 양조장에서 자살한 사내를, 「민달팽이」, 「달팽이가 지나간 길은 축축하다」는 실업자를, 「망둥어」에서는 정리해고된 박과장을, 「단풍」은 길손다방 늙은 여자의 삶을, 「옹이」는 유방암의 정이 어머니를. 「참새」는 스물셋 봉제공장 여공을, 「굴비」는 마당에서 죽은 노인을, 「겨울둥지」는 반지 세공 김씨를, 「빨판상어」는 K섬유 김부장을 표현하고 있고, 이 시의 중요한 테마인 가족사 역시 「누에」, 「대나무」, 「생솔」, 「감꽃」, 「두꺼비」,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취나물」등등 상당수의 시가 자연의 소재에 빗대고 있다. 또한 화자의 삶과 애정관계를 표현한 「개구리밥」,「황홀한 수박」, 「깨꽃」도 같은 공식의 맥락에서 읽힌다. 단순히 시집을 읽는 것이 아니라 창작에 도움이 되려 한다면 연구해볼 만한 도식화가 아닐까.
  한편 박성우의 시들이 가난하고 어려운 삶의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어 자칫 진부한 포즈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시집 서평에 나와있는 "박성우 시가 가지고 있는 미덕은 그가 가난의 문제를 절실하게 다루고 있는 데서 파악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미적으로 형상화하는 시인의 자세에서 찾아질 수 있다"라는 강연호 시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어쩌면 그가 가난하고 곤궁한 현실을 우회적으로 자연의 질서에서 이해함으로서, 삶의 희망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성에꽃, 그 구멍으로」의 '사람의 방으로 들어오지 못한 겨울바람들/ 거처 없이 떠도는 물의 씨앗을 모아/ 온실 같은 유리창에 성에꽃을 피운다'(52쪽)라든지, 「강천사에서」의 '벼랑도 마음을 닮은 걸까/ 올려다볼 때보다/ 내려다볼 때 더 위태롭다'(83쪽)의 표현들은 그의 관찰과 직관이 얼마나 경지에 올라 있는가 하는 대목을 알 수 있는 좋은 표현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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