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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불빛

2002.05.08 16:17

윤성택 조회 수:447 추천:2


인터넷을 알게 되었던 때
아이디로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가
두 가지 이름을 생각해냈습니다.

"간이역불빛"
"사진관 빈의자"

그래서 99년부터였던가, 한 2년 간이역불빛으로 지냈습니다.
누구는 나를 보고 이름 대신
불빛님! 이라고 불러 머쓱해지기도 했지만.
그리고 사진관 빈의자는 요즘에 들어
편한 상대에게 간간이 쓰고 있답니다.

생각해보니 이름이란
정신의 배후가 되기도 했을까요.
그 수많은 글들을 남기며
나는 그 간이역 불빛처럼 외로웠고,
사진관 빈의자처럼 쓸쓸했습니다.


나,
밤기차를 탔었다
검은 산을 하나씩 돌려 세워 보낼 때마다
덜컹거리는 기차는
사선으로 몸을 틀었다
별빛은 조금씩
하늘을 나눠가졌다
종착역으로 향하는 기차는 인생을 닮았다
하루하루 세상에 침목을 대고
나 태어나자마자 이 길을 따라 왔다
빠르게 흐르는 어둠 너머
가로등 속 누군가의 고단한 길이 들어 있었다
간이역처럼 나를 스쳐간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차창 밖은 세상의 가장 바깥이었다
함부로 내려설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나,
기차표를 들여다보았다
가는 곳이 낯설어 지고 있었다

- 「밤기차」


그리고
영정 사진과 아기 돌사진이 나란히 진열된 어느 사진관,
그 안을 건너다 볼 때
저 의자였겠구나.
삶과 죽음이 저기에 들어앉았었구나.
생각하다가
문을 열고 들어가 사각의 귀퉁이에 나를 잡아넣었습니다.
이력서.
낯선 사내를 저 틀에 가두어
가거라! 인터넷 망망대해를 떠돌다가
전화선을 타고 돌아와라.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간이역불빛과 사진관 빈의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한없이 낮아져서
구식 금성라디오를 귀에 대고 듣는
심경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2002.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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