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장마

2002.05.16 15:34

윤성택 조회 수:583 추천:9






창문 너머 건물 너머
자욱하게 먹구름이 바람 먼저
풀어 보냅니다.
비내음이라지요?
언젠가 어느 MT에 갔을 때
양철지붕 위로 하얗게 쏟아지는 빗소리,
그 빗소리를 꺾어다가
귀에다 걸어두고 마음에다 걸어두고.
하는 일 없이 배 깔고 턱을 괸 채
빛바랜 창호지문 빼꼼이 열린 마당에
시선만 내어놓아 비 맞게 했던 시절.
다 되었다며
참치찌개 김 폴폴한 냄비에 둘러앉아
신나게 두들겼던 장단과,
그러다 지치면 얇은 담요 밑에서
손을 잡고 진짜 전기일지도 모를
전기게임을 했던 시절.

밤잠을 새어도
싱싱한 파다발처럼
풋풋했던 마음들.

그게 청평 어디였던가
제부도 어디였던가
어느 산자락 밑이었던가
가물가물합니다.

파전에 동동주.
입가에 허옇게 묻어나는 술자국에도
그대는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기는 것이 어디 술뿐이겠습니까.
이런 날은 느슨했던 인연의 끈도
고무줄로 바뀌어 또 그 탄성彈性으로
한달음에 달려올 친구가 있을 것입니다.

장마,
아직은 버틸만 합니다.  


2001. 7. 3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47 조가튼 가을 2002.11.04 472
46 첫눈 [2] 2002.11.13 538
45 이게! 2002.11.27 410
44 겨울비 [2] 2002.12.16 561
43 다시 셀마를 추억함 2003.01.04 393
42 슬리퍼 2003.01.17 401
41 유리창은 수다중 2003.03.03 474
40 소리 지른 사람은 저입니다 2003.04.02 462
39 박성우 [거미] (창작과비평사) 시집 읽기 2003.04.08 438
38 그런 날 2003.04.29 431
37 [詩作노트] 실종 2003.04.29 506
36 선생님을 돌려주세요 2003.05.16 372
35 나는 지금, 2003.06.17 473
34 견딜만 하다 2003.06.24 639
33 '오노 요코'전을 보고 [2] 2003.07.08 337
32 두근두근 소곤소곤 2003.07.21 423
31 늦은 아침 2003.07.30 530
30 김솔에게 - 너의 만연체가 말해 주는 것 [1] 2003.08.26 513
29 가을 단상 [1] 2003.10.01 485
28 귤로 물들다 2003.10.13 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