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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레퀴엠에 대한 단상

2001.06.14 16:21

윤성택 조회 수:407 추천:2

* 6월 13일, 광화문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베르디 "레퀴엠" 연주회에 갔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적은 단상들입니다.





110명의 오케스트라, 120명의 가수로 이뤄진 합창단.
그 맨 앞좌석은 악보 넘기는 소리까지 생생하다.
여기서만큼은 귀는 영혼을 듣는 더듬이다.
장엄하고 엄청난 스케일의 화음이 심장을 옥죄여 온다.


제1곡
그는 고요하게 죽음을 맞는다.
현실의 사람들에게 죽음은 몸이 예정된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음 뒤의 날은 진노의 날,
폭포 아래의 사람처럼 몸밖으로 떠나는 영혼은 고통스럽다.
이상한 나팔소리가 저음으로 들리고,
불어오는 바람에 책장이 한없이 넘겨진다.
그의 일생의 내력이 읽혀진다.
돌이켜보면 이승의 삶은 외롭고 쓸쓸했는지도 모른다.
그 과거에서 들려오는 탄식의 순간들.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삶에서 얼마의 눈물의 그를 실존케 하는 것일까.
가녀린 호소가 거대한 대왕의 목소리와 소통되는 순간,
혼란스런 상념이 나부낀다.
그는 슬퍼한다. 일생을 완성시킨 삶에서 오는 회한이 한없이 밀려온다.
저주받은 자, 심판의 목소리가 지상에 끝없이 메아리친다.


제2곡-1
죽음이란 무엇일까.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구구한 추측만 난무할 뿐,
아무도 저편의 풍경을 보지 못했다. 인간의 감성으로 그리고 음악으로
죽음을 경험케 한다는 것은 어쩌면 또다시 삶에 대한 열망이 아닐까.


제2곡-2
인간이 생명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은
창조 그 자체에서 사멸로 이어지는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절대주란 그 흐름 안에서의 방향성이며,
그것을 추동케 하는 에너지일 것이다.


제3곡
백발의 지휘자는 가느다랗고 얇은 지휘봉으로 악기를 불러세운다.
호명된 자리마다 음은 하나의 호흡으로 되울려 나온다.
노래하는 가수들의 입에서 풀려 나오는 소리는
알 수 없는 기호와 맞물려 촘촘한 음의 간격에 섞인다.


제4곡
찬양,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소리의 경배,
한 목소리로 혹은 각기 다른 음색이 너울지는
저 강렬한 징후들.


제5곡
평화에는 영혼이 저당잡힌 그 무언가가 있다.
들판의 고요와 숲의 속알거림조차
그 평화 안에서는 소도구이다. 그 거대한
테두리 안에서 끊임없이 범접되는 흔들림,
이것이 인간을 인간케 하는 접점이다.


제6곡
영원.
어쩌면 나조차 우주의 시작에서 태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영원은 존재의 다른 이름이며,
처음과 끝이 이어진 뫼비우스띠처럼 끝없는 순환의 역사를,
싸이클을 반복하는 것일 것이다.


제7곡
참회는 시간에 대한 되새김이다.
안으로부터 울려나오는 또다른 현실이다.
무너질 것이 없는 벼랑 끝의 순간들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죽음은 다시 체험되는 것이며
우주의 질서에 편승하는 유일한 모색이 될 것이다.





[베르디 사진을 클릭하면 "레퀴엠"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