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향

2002.09.27 17:11

윤성택 조회 수:325 추천:1




오늘 누군가
진짜 사향麝香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사향노루는 극히 일부가 신기하게 배꼽이 썩는 병이 걸린답니다.
그 사슴이 앉아 있을 때
배꼽의 냄새를 좇아
개미들이 그 안에 들어갔다가 죽는답니다.
그래도 개미들은 계속해서 들어간답니다.
그게 더께가 되어 사향이 된다는군요.
일종의 사슴의 암癌인 셈입니다.
어쩌다 그 암덩이가 귀한 약재가 되었을까.
점심시간 낮술 한잔 받아 쥔 제 모습은
영락없이 호기심이 가득 찬 초등학생이었습니다.

공업화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내 몸으로
글쎄요, 사리가 나올까 싶지만
비누 8개, 2200개의 성냥머리,
설사약 한 봉지, 못 한 개, 연필 2천 자루를
만들 수 있다는군요.
10만원으로 이 재료를 다 사다가
나를 다시 만들 수 없으니
시도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요.

제가 왜 놀랐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37도 전후의 온도로
여지껏 잘 돌아가고 있는
이 보일러가 감탄스러울 뿐입니다.
혹시 내 몸 어딘가가 썩어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면
누가 나에게 들어와 썩을 것이며
누가 나를 덩이 채 기억할까.
캬, 낮술 두 잔이 잘도 넘어갔습니다.


2002. 9.26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27 어느 시인의 죽음 2003.11.20 571
26 장마 2002.05.16 583
25 시를 위하여 2003.10.25 613
24 집에 가는 길 2002.07.02 628
23 견딜만 하다 2003.06.24 639
22 신춘문예의 계절 2003.11.27 639
21 2004년 12월 31일에게, 그리고 2005.02.03 664
20 옥상에서 본 그리움 2002.07.23 687
19 잠바, 2004.04.17 696
18 밤술 2007.01.27 697
17 너를 기다리다가 2002.06.05 712
16 3년 전, 2004.03.04 728
15 김충규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다층) [2] 2001.07.06 770
14 대학원, 2003.12.09 773
13 가을의 노래 - 보들레르 [1] 2006.09.21 817
12 편지 [1] 2003.12.11 847
11 시를 쓰는 아우에게 [3] 2007.03.09 867
10 장마에게서 장마에게로 [3] 2005.06.22 883
9 혼자 보는 영화, [1] 2004.02.25 898
8 나였던 기억 2004.01.07 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