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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신경림

        

        
        삶과 죽음의 성찰적 미학!


세월을 실감하는 시를 쓰기란 그 만큼 살아온 날들에 대한 특권일지 모른다. 신경림의 목소리는 세상을 관조시킨 이미지의 경지를 보여준다. 그의 시 구절 하나하나 죽음 쪽에서 회한과 그리움으로 바라본 성찰적 미학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질주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신경림의 깨달음은 삶과 죽음에 또 다른 실루엣을 제공한다.
우선 시인이 인생의 어느 부분에 와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나도 반쯤은 몸을 밖으로 내놓고 있는 것이 아닐까
        땀내 비린내로 숨막히는 열차 속
        새 얼굴들과 낯을 익히며 시시덕거리지만
        내가 내릴 정거장이 멀지 않음을 잊고서
                                                ― <숨막히는 열차 속> 70쪽


인생을 살다보면 돌아갈 날이 멀지 않음을 직시하는 시인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그런 시인은 추억 속의 모든 시적 이미지를 소재로 이끌어 낸다. 그러나 과거 속에 묻혀버린 지난날들은 시인이 보기엔 너무도 멀다!


        시게전을 잊고 유행가가 자욱한 골목을 잊고
        싸리울 하얀 빈방을 잊고 비릿한 이불자락을 잊고
        달빛을 가리는 살구꽃과 과묵한 꼬치집 주인을 잊고……
        당초부터 이 세상에 없는지도 모를
        그녀네 집이 멀어서 너무 멀어서
                                                ― <그녀네 집이 너무 멀어서> 43쪽


시인은 자못 이런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할아버지와 아버지 또는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자신에게 이르는 삶의 끈을 잊지 않는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25쪽


이렇듯 신경림의 이 시집은 다른 시집보다 더욱 완숙의 경지를 넘어 노숙의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무언가 젊은 혈기로 화려한 감정들만 다루었던 나의 시세계에 견주어 볼 때, 이 시집은 나의 수다스러움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