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이야기 詩 이후 또 다른 모색



            
                                            
                                                                  윤성택


  90년도였던가 홀로 집에서 참치캔과 문어다리 그리고 소주 두어 병을 사놓고 최두석 시집을 정독했던 때가 있었다. 『대꽃』,『성에꽃』시집 시 한 편을 읽을 적마다 소주 반 잔씩 더운 가슴에 들이켰던 그 감동, 그 혼자 훌쩍였던 울음, 술에 취해 젖은 눈으로 잠들었던 나의 방황과 고독의 시절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꽃처럼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시를 쓰고 싶다」 최두석의 이번 시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고드름 기둥
        층층히 얼어붙은
        층암절벽에
        소나무 한 그루
        눈을 이고 서서
        희망과 절망의 수십 세월
        안간힘으로 뻗어간
        뿌리의 용틀임과
        뿌리가 엉키는 자리에 터잡은
        어린 진달래의 녹두만한 꽃눈을
        바람 타고 날으는
        기러기 소리 들으며
        시리게 바라보네.
                                                ― 「세한도」 16쪽


  최두석의 화두는 서사시에 있었다. 그의 웅장한 스케일의 시들을 접할 때면 늘 감탄을 쓸어내려야 했다. 『대꽃』,『성에꽃』에서 보여주는 서사성은 80년대가 민중 봉기의 시기였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한 '이야기 시'의 독특한 영역을 넓혀왔던 시인은 90년대 중반이후 뚜렷한 이슈가 자리잡히지 않은 시점에서 약간 멈칫하는 모양새의 시들이 보인다.


        희망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희망은 어떻게 전승되는가
        촛불 앞의 희망과
        총칼 아래 희망은 어떻게 다른가
                                                ― 「희망」 중 44쪽


  그의 시가 관념성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뚜렷한 시인의 시대에 대한 시적 성장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불현듯 '안도현'을 떠올리게 된다. '안도현'의 초기시는 상당한 민중적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시집 『모닥불』참조)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 '백석'의 어투를 닮은 일련의 시집들(『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등)를 접할 때면 시인의 시대정신에 대한 진보적(?)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한 마디로 시인도 시대에 맞춰 그때 그때 시적 성향이 변할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적 감동의 자리에는 보편적 삶에 대한 고민이 자리하고 있고 또 그 보편성은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흑백 텔레비전에서 칼라 텔레비전로 바뀌듯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감동의 자리에 차지하는 절대진리는 불변한 채 말이다.
그러나 최두석은 어떠한가? 그러한 민중적 성향을 80년대의 경우 전국적 대상을 삼다가 이번 시집에서는 휴전선 근처로 제한 시키는 민중의 입지가 적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① 미군 사격 훈련의 불똥은 「동두천 산불」 96쪽 3행
        ② 대남방송과 대북 방송이 머리끄뎅이를 붙들고 늘어지는 소음 「흑염소와 인삼밭」 95쪽 6행
        ③ 내 자유롭게 훨훨/ 남북을 오가고 싶은 소망의 새 한 마리 「머머리 섬」 93쪽 끝연
        ④ 남북의 선전 음파 사이로 「임진강 해앓이」 82쪽 18행
        ⑤ 애꿎은 농섬에/ 폭격하고 폭격하는 미군 전투기들 「고온리 홰나무」 64쪽 5연 4-5행


  한 가지 염두해야할 사실은 시집의 끝부분 작품인 만큼 그의 이런 작품은 이미 오래전에 축척되었던 작품일거라는 추측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은 궁극적으로 모색이라고 말한다. 최두석 시인의 모색은 오랜 침묵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90년 『성에꽃』이후 7년 만이다!) 예전의 날카로운 면모는 줄었으나 몸으로 부딪치며 쓰는 시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시작업임을 김수영이 말한바 있지만 대상을 향해 끊임없이 접촉하는 시인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