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낙타 - 김충규

2001.04.04 16:54

윤성택 조회 수:2000 추천:288

도서출판 다층 시집,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中  




낙타




나의 집으로 낙타가 들어왔다 쉴 곳을 찾았다는 듯이 길게 숨을 토했다 맑은 눈에선 고행의 흔적을 엿볼 수 없지만 살점 없이 앙상한 다리는 한없이 지쳐 보였다 낙타와 함께 지내기엔 집이 너무 좁아 나는 낙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느닷없이 낙타가 등을 낮췄다 나더러 올라타라는 것인지 푸르르 몸을 털었다 나는 낙타의 등에 올라타지 않았다 나는 사막을 지키는 전사가 아니므로 더구나 순례든 고행이든 사막으로 떠날 계획이 없었으므로 낙타를 집 밖으로 몰아낼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내가 자신의 등에 올라타지 않자 낙타는 그만 풀썩 주저앉더니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내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 낙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눈앞에 무덤 하나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감상]

쉴 곳을 찾아 먼길을 걸어온 낙타, 그 낙타를 달가와 하지 않는 화자. 이 묘한 대별구도가 이 시의 흡입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모티브가 됩니다. 낙타는 이승의 삶을 무덤으로 완성한다는 듯, 이승저편에서 무덤 하나 이고 왔다는 듯 지그시 눈을 감은 것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91 꽃피는 아버지 - 박종명 [4] 2001.04.03 3084 281
1190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 박라연 [1] 2001.04.03 2095 300
1189 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형도 [2] 2001.04.03 3113 294
1188 봄의 퍼즐 - 한혜영 [2] 2001.04.03 2355 313
1187 나무의 내력(來歷) - 박남희 [2] 2001.04.04 2042 291
» 낙타 - 김충규 [1] 2001.04.04 2000 288
1185 구부러진 길 저쪽 - 배용제 [1] 2001.04.06 1939 296
1184 오존 주의보 2 - 문정영 [1] 2001.04.07 1848 299
1183 넝쿨장미 - 신수현 [1] 2001.04.07 2047 332
1182 그물을 깁는 노인 - 김혜경 [1] 2001.04.09 2631 306
1181 세월의 변명 - 조숙향 [1] 2001.04.09 2479 273
1180 정기구독 목록 - 최갑수 [1] 2001.04.10 1880 280
1179 제기동 블루스·1 - 강연호 [2] 2001.04.10 1801 283
1178 왕십리 - 권혁웅 [1] 2001.04.10 1842 292
1177 트렁크 - 김언희 2001.04.11 1758 332
1176 우체통 - 이진명 2001.04.11 2538 334
1175 날아가세요 - 허연 2001.04.12 2172 327
1174 우울한 샹송 - 이수익 2001.04.13 1876 324
1173 찬비 내리고 - 나희덕 2001.04.14 2114 302
1172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 허수경 2001.04.16 2126 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