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20세기 응접실 - 윤성학

2007.06.05 17:59

윤성택 조회 수:1129 추천:155

<20세기 응접실> / 윤성학 (2002년 『문화일보』로 등단) / 《문장웹진》 2007년 6월호


  20세기 응접실

  다시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 갔을 때 무어라 명찰을 달아주기 어려운 슬픔 같은 것들이 또 내 어깨를 짚었다 김 선생의 응접실 나무 의자를 만져보았다 저당을 설정하고 내 것을 내준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고 둘로 나뉘고 또 나뉘고 또 나뉜 것이 다시 극정을 띠며 나뉘는 것도 그대로였다 삿된 것들이 주류인 것도 변하지 않았다 선생과 다른 것이 있다면 나에게는 대한민국 여권과 단수비자가 있을 뿐이었다
  내 어깨를 짚고 선 것 그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상해, 임시, 정부…… 그의 가운데 이름을 들여다본다 그래서 떠돌았고 때를 알 수 없는 잠시라 슬프게 머물렀던 것인데 왜나는 책상에 격자를 그리는 간간한 햇빛 속에서 생의 모든 것이 임시라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내가 임시이므로 그리도 손에 잡히지 않아 가슴을 뜯게 만든 것들은 임시의 임시이고 이 마음은 임시의 임시의 임시인 것일까 임시를 기념하기 위해 임시의 것들로 영원을 기약하는 사람들 내가 돌아가 머물고 싶은 정부는 어디일까 3개월 단수비자 여럿이 카메라 앞에 서서 도시락 폭탄처럼 웃고 돌아간다


[감상]
1919년 3·1운동 직후 조국의 광복을 위해 중국 상해에 조직한 임시정부이지요. 그리고 8·15광복 때까지 국내외 독립운동을 통할하는 최고기관으로서 활동하였으나 국제간의 정부승인을 받지 못한 채 광복을 맞아 정부자격이 아닌 개인자격으로 쓸쓸히 돌아오게 됩니다. 이 시는 그런 역사적 배경을 분위기로 이미지를 이끌어갑니다. 하나의 나라와 독립을 원했던 그분들을 생각하자면, 호남과 영남이 갈리고 정당이 갈리는 요즘의 세태 앞에서 <슬픔 같은 것들이 또 내 어깨를 짚>는 것이겠지요. 이제는 <3개월 단수비자>로 갈 수밖에 없는 남의 나라 관광지의 낡은 건물을 돌아보며 진정 <임시>라는 단어를 되돌아보는 시인의 심경이 진솔하게 배어나옵니다. 또한 한낱 관광차원의 기념사진으로 생각하는 <여럿이> 틈에서 <도시락 폭탄>을 떠올리는 대목은 이 시의 여운을 더하게 합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91 木도장 - 손택수 2001.06.01 1536 350
1190 흉터 속에는 첫 두근거림이 있다 - 정영선 2001.07.12 1620 337
1189 우체통 - 이진명 2001.04.11 2538 334
1188 트렁크 - 김언희 2001.04.11 1758 332
1187 넝쿨장미 - 신수현 [1] 2001.04.07 2046 332
1186 ㅎ 방직공장의 소녀들 - 이기인 2001.04.24 1668 331
1185 나무에게 묻다 - 천서봉 2001.06.11 1781 327
1184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 허수경 2001.04.16 2126 327
1183 날아가세요 - 허연 2001.04.12 2172 327
1182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 장석주 2001.06.28 1649 325
1181 전망 좋은 방 - 장경복 2001.04.23 1889 325
1180 백신의 도시, 백신의 서울 - 함민복 2001.05.17 1380 324
1179 간이역 - 김선우 [2] 2001.04.17 2218 324
1178 우울한 샹송 - 이수익 2001.04.13 1876 324
1177 빛을 파는 가게 - 김종보 2001.07.16 1694 322
1176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 장석남 [1] 2001.04.28 1759 321
1175 펜 노동자의 일기 - 이윤택 2001.04.26 1661 321
1174 그대들의 나날들 - 마종하 2001.06.29 1522 319
1173 장화홍련 - 최두석 2001.04.30 1504 319
1172 봄의 퍼즐 - 한혜영 [2] 2001.04.03 2355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