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젖」 / 이영광 (1998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 《문예중앙》 2007년 겨울호
검은 젖
죽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햇빛이 기름띠처럼 떠다니는 나의 성지(聖地),
젖가슴만한 무덤들 사이에
나는 수혈 받는 사람처럼 누워 쉰다
삶은 힘차고 힘겨우며,
헛디뎌 뛰어들고 싶으리만치 어질어질하다
이곳은 고요도 숨죽일 만큼 고요하다
햇빛은 여기저기서 기둥을 만들었다가 흩어진다
죽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것이나 다 되고 만다
나는 죽음의 희끗희끗한 젖무덤에 얼굴을 묻고
숨 멈추고, 검은 젖을 깊이 빤다
[감상]
가만히 생각해보면 <젖>은 빨아들인다는 것을 연상케 합니다. 그런 면에서 죽음은 아무런 숨질도 없는, 빨아들이거나 내쉬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고요>입니다. 이 시는 이러한 <숨>에 관한 통찰로 한 행 한 행 시선을 이끕니다. <죽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면>이란 전제는 ‘죽음을 직시하라’ 이겠지요. 죽음을 직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고 또 아무것이나 되고 마는 불분명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입장에서 본다면 <죽음>이 그렇게 운명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숨은 생명보다 더 길고 힘찰지도 모릅니다. 끊임없이 팽창해가며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검은 실체를 만들어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무덤>에서 <젖가슴>으로의 전환, 기이하게 현실을 판독하는 죽음 저편의 시선이 햇빛을 <기름띠>와 <기둥>으로 인식해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