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은 방 - 박장호

2008.10.15 15:56

윤성택 조회 수:1258 추천:116

『나는 맛있다』 / 박장호 ( 2003년『시와세계』로 등단) / 랜덤시선 44 (2008)


  검은 방

  어제는 웃고 있었다.  술에  많이 취했고  슬레이트 지붕
에 비가 내리치고 있었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나는 누군
가와 전화를 하며 웃고 있었다. 어제는 웃고 있었다. 기억
나지 않는 말들을 했고 기억나는 말을 들었다.  오늘은 행
복해 보이시네요.  창백한 그림자가 방 안에  드리워지고
있을 때  나는 검은색의 관으로 변해가며 웃고 있었다. 말
은 쉽게  흩어지고 오래 떠도는 법. 나밖에 없는데 살인이
하고 싶은 이유와  창도 없는데  비가 들이치는 이유를 생
각하며 이불 속에서 웃고 있었다.

  어제는 웃고 있었다.


[감상]
기억은 구체적으로 살아 있는 개인(실존)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제를 기억한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에 의해서 선택된 과거의 복기와 같습니다. ‘웃는다’는 것은 기쁘거나 만족스러울 때 얼굴에 깃든 표정일 터인데, 이 시의 전체적인 흐름은 우울한 음악처럼 바닥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웃고 있다는데 정말 웃고 있는 걸까하는 궁금증. 그러나 웃고 있다는 화자의 의지를 상상해봄으로서 비롯되는 쓸쓸한 연민 같은 것이 전해져 옵니다. ‘기억나지 않는 말들을 했고 기억나는 말을 들었다’, 타인과의 관계로 깨어 있는 어제. 그 눈빛이 시집 전체를 지나고 있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91 문을 닫다 - 문성해 2007.08.28 23689 98
1190 위험한 그림 - 이은채 [1] 2005.02.25 15698 191
1189 절정 - 함성호 2011.04.25 4059 157
1188 벚꽃 나무 주소 - 박해람 2015.05.11 3643 0
1187 행복 - 이대흠 [2] 2011.03.18 3635 182
1186 가을날 - 이응준 2002.09.26 3601 259
1185 봄비 - 서영처 2006.01.14 3275 276
1184 추억 - 신기섭 [6] 2005.12.06 3154 232
1183 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형도 [2] 2001.04.03 3113 294
1182 꽃피는 아버지 - 박종명 [4] 2001.04.03 3084 281
1181 해바라기 - 조은영 [1] 2005.11.01 3023 251
1180 사랑은 - 이승희 2006.02.21 2977 250
1179 별 - 김완하 2002.08.12 2923 249
1178 가을산 - 안도현 2001.09.27 2815 286
1177 고백 - 정병근 [1] 2005.08.17 2711 250
1176 싹 - 김지혜 2005.12.27 2666 266
1175 그물을 깁는 노인 - 김혜경 [1] 2001.04.09 2631 306
1174 유리꽃 - 이인철 2006.04.03 2589 253
1173 이별 - 정양 2006.03.02 2542 287
1172 우체통 - 이진명 2001.04.11 2538 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