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자동카메라 - 김지향

2010.02.03 20:49

윤성택 조회 수:1437 추천:109

<자동카메라>/ 김지향 (1954년 『태극신보』에 작품발표로 활동시작) / 《다층》2009년 겨울호

        자동카메라

        카메라는 혼자서
        산으로 갔다 바다로 갔다
        눈을 접었다 떴다 마음대로다

        문득 카메라 눈이 불꽃이 되었다
        사람의 눈길만 닿으면 더욱 맹렬해진다
        넓게넓게 불꽃이 퍼져나간다
        불바다가 되고 불하늘이 되고
        불우주가 되고

        카메라 속에 나무가 불타고 산이 불타고
        들판이 불타고 바다가 불타고 길이 불타고
        카메라 속에 빌딩이 불타고 사람이 불타고

        카메라 속에 들앉은 세상이 익어간다
        세상 속에 들앉은 사람이 익어간다
        사람이 익어서 나가고 산이 나가고
        들판이 나가고 나무가 나가고 우주가 나간다
        익은 사물 모두는 카메라 속에서 나간다

        모두 삭제된 허공이 카메라 속에서 나간다
        문득 카메라 눈을 꾸욱 접은 채
        다시는 삭제되지 않을 새 우주를
        실 티 같은 촉수로 새로 그려내는 중이다

  
[감상]
매번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가지만, 카메라가 여행 중이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이 시는 이런 도구로서의 카메라가 객체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주체가 되는 관점을 매력적으로 펼쳐냅니다. 자동카메라이기에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플래시 불빛이 ‘불꽃’이 되는 순간, 이 시의 배경은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로 포착됩니다. 분주히 셔터를 누르는 광경이 경쾌하게 지나가듯, 운율감 있게 반복되는 묘사가 센서처럼 반짝거립니다. 언제든 흔적없이 삭제될 수 있기에 카메라 속은 ‘불타는’ 풍경일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카메라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혼자서, 낯선 곳에 도착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91 木도장 - 손택수 2001.06.01 1536 350
1190 흉터 속에는 첫 두근거림이 있다 - 정영선 2001.07.12 1620 337
1189 우체통 - 이진명 2001.04.11 2537 334
1188 트렁크 - 김언희 2001.04.11 1757 332
1187 넝쿨장미 - 신수현 [1] 2001.04.07 2043 332
1186 ㅎ 방직공장의 소녀들 - 이기인 2001.04.24 1667 331
1185 나무에게 묻다 - 천서봉 2001.06.11 1781 327
1184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 허수경 2001.04.16 2124 327
1183 날아가세요 - 허연 2001.04.12 2171 327
1182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 장석주 2001.06.28 1649 325
1181 전망 좋은 방 - 장경복 2001.04.23 1888 325
1180 백신의 도시, 백신의 서울 - 함민복 2001.05.17 1379 324
1179 간이역 - 김선우 [2] 2001.04.17 2216 324
1178 우울한 샹송 - 이수익 2001.04.13 1876 324
1177 빛을 파는 가게 - 김종보 2001.07.16 1694 322
1176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 장석남 [1] 2001.04.28 1758 321
1175 펜 노동자의 일기 - 이윤택 2001.04.26 1661 321
1174 그대들의 나날들 - 마종하 2001.06.29 1522 319
1173 장화홍련 - 최두석 2001.04.30 1501 319
1172 봄의 퍼즐 - 한혜영 [2] 2001.04.03 2354 313